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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칼럼> 공포와 불안을 그린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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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평택신문 │ 기사작성 2020-7-21 │ 조회40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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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와 불안을 그린 화가

사람들이 겪는 ‘공포’라는 감정에 대해 느끼는 바는 대게는 보편적이다.
그러나 개인의 사적인 경험으로부터 얻게 된 공포심을 다른 생각으로 그려낸 두 화가가 있다.


‘에드바르트 뭉크’ 그리고 ‘에곤쉴레’이다. 두 화가 모두 평범치 않은 삶을 살았으리라 짐작이 될 만한 그들의 그림은 이미 우리들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는데 그림에서 느껴지는 것들은 공포, 불안 그 이상을 넘어서 동정과 연민으로 이어지고 있다.

 

에드바르트 뭉크 (Edvard Munch,1863~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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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는 스웨덴 노르웨이 빈민가에서 태어났으며 그는 어렸을 때부터 가족들의 죽음을 가까이에서 마주해야 했다. 5살 때 어머니는 결핵으로 13살이 되었을 때는 누나를 폐병으로 잃게 되었고, 여동생 중 한 명은 우울증으로 정신병원에 보내지면서 그의 그림 속엔 죽음의 공포로부터 나타난 불안감이 내재돼 있다. 뭉크만의 특색이 두드러진 어두운 화풍은 많은 이들에게 관심을 자아내며 그만의 예술관이 정립되면서 표현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는 80여년의 인생동안 2만여점이 넘는 많은 작품을 그렸는데 그 중에서도 유독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은 작품은 《절규》이다. 


《절규》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1. “나는 두 친구와 함께 산책을 나갔다.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그때 갑자기 하늘이 핏빛처럼 붉어졌고 나는 한 줄기 우울을 느꼈다. 친구들은 저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고 나만이 공포에 떨며 홀로 서 있었다. 마치 강력하고 무한한 절규가 대자연을 가로질러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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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이 드리워진 날 친구들과 함께 걷다가 경험한 찰나를 표현한 그의 말이다. 사람들이 느끼는 일반적인 석양의 풍경은 뭉크의 감정과는 다르다. 아름답다고 생각이 드는 석양의 붉은 노을은 그에겐 공황발작을 준 불안 했던 공포의 순간이었다. 가족들의 죽음을 통해 얻게 된 공포와 불안이라는 감정은 그에겐 부정의 대상이기보다는 나의 삶 그 자체로 인정하는 자세로 작업이 이루어졌다. 그런 감정의 순간을 기록한 작품 《절규》는 극적인 표현 방법으로 인간의 내적인 감정을 전달하였고, 강렬한 색감, 왜곡된 선의 움직임, 비이상적인 인간의 형상 그 모든 것이 평범하지 않게 보여진다.

이 그림이 현시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유명해진 이유는 우리 인간들의 보편적인 경험을 그려냈고, 절규하는 저 모습은 마치 우리 일상생활에서 겪는 공포심과 같이 느껴지는 익숙함 때문이다. 그의 작업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부터 시작됐지만 결코 그것은 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며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것임을 또한 그것이 그저 부정적이지만은 않음을 많은 이들에게 보여주고자 했다. 실제로 이 작품의 처음 제목은 ‘자연의 절규’였다. 개인의 절규가 아닌 자연 전체, 혹은 모든 삶의 절규라는 내용이 내재된 것이 아니었을까? 공포와 불안이라는 요소는 나 개인의 것이 아니며 누구나 겪는 것. 이것을 우리는 그가 받아들이는 마음처럼 순응해야 함을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2. “삶에 대한 두려움은 필요하다. 불안과 질병이 없는 나는 방향키 없는 배다.


내 고난은 내 자신과 예술의 일부. 그들을 나와 구분할 수 없고, 그것을 파괴하는 것은 나의
예술을 파괴하는 것이다. 그 고통 들을 간직하고 싶다.”

자신의 예술적 세계관을 위해 고독과 불안을 사랑했던 뭉크.


어둡고, 거친 화풍의 작품들을 많이 그린 그였지만 표면적으로 드러난 그 모습 내면에는 뭉크만의 간직하고 싶었던 그 고독한 감정들이 결코 어두운 것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림을 통해 공포심을 극복하고자 했던 그의 작품 《절규》가 세기의 명작으로 평가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에곤 쉴레 (Egon Schiele,1890~19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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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랑을 받지 못한 괴로움 때문에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 자신이 어떤 대상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점점 퇴화되는 것 같아 그게 두렵다.”

어머니와 아이처럼 핏줄로 연결된 관계는 어때야 정상적인 걸까? 굳이 답을 말하지 않아도 되는 이 질문이 우리들에게 물어볼 가치가 있기는 한 것일까? 하지만 평생을 이 질문에 물음표를 달고 살았던 사람이 여기 있다. 바로 화가 에곤쉴레다. 공포와 불안을 느끼는 인간의 육체와 성적인 욕망을 주제를 주로 다루어 20세기 초 많은 논란이 되었던 화가 쉴레는 사실 어머니에 대한 애증과도 같은 자신의 감정을 시작으로 그의 비틀린 형상의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속사정을 모르고 작품을 보면 그렇게 보이지 않을 그림들이지만 사실 그는 어머니에 대한 감정들이 부정적인 측면보다는 어린아이 마냥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 순수한 연민의 향수를 뿜어내는 청년이었다.

#2. 나를 사랑하는 어머니는 어디 계시나요?

그의 그림들 중 어머니 시리즈에서 그의 따뜻한 내면의 감성이 특히 잘 묻어있는데 ‘mother & child’ 이 작품이 주는 강렬한 인상은 뭉크의 ‘절규’에서 풍기는 기괴함과 공포심이 닮아있다. 무언가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아이. 그리고 그런 아이를 보호하든 감싸 안은 어머니의 두 손이 무엇을 느끼게 하는가. 그녀의 표정과 손은 이미 무언가를 체념한 듯하다. 움푹 파인 어머니의 뺨과 뼈가 앙상한 손을 보면 그녀는 이미 죽음과 가까이 있지 않을까 추측해볼 수 있다. 눈앞에 무언가의 공포의 대상이 있지만 병약한 어머니는 애써 자신의 아이를 보호하려 하는 모성애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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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작품 ‘Blind Mother’에서는 눈이 먼 어머니가 굉장히 불편하고 불안한 자세로 두 아이를 바닥에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애쓰는 어머니의 모습을 그렸다.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고 아이들을 보호하려는 모성애를 묘사한 그림. 그러나 곧 떨어질 것만 같은 위태로운 모습들은 마치 어머니의 노력은 헛됨을 보여주는 어두움을 그려냈다. 실레 자신의 성장배경과 연관이 있는 이 작품들은 어머니와 아이들의 모습은 비인간의 형태를 지니고 있고, 생명이 느껴지지 않아서 그냥 보면 섬뜩해 보이는 그림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레만의 따뜻함과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희망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어머니 시리즈 작품들을 통해 그가 간절히 원했던 자신의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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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흔들리지 않는 그들의 신념

내면적 의도와는 다르게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기괴함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오해를 하고 감상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림에서 도저히 그런 의도를 느끼지 못하겠다며 지금까지도 부정적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보수적인 그런 사람들은 혹시 이 둘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낯선 감정 그리고 말로 형용하지 못할 감각들, 욕망들을 보편적인 우리 인간들이 경험하는 감정과는 다름을 애써 주장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닐까?

보수적인 사람들은 이에 실망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 두 화가가 예술가로써 이루어낸 성취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 그 당시에는 그런 사람들로 인해 작품의 가치가 훼손되었지만 현재 그들의 작품을 비판하려 그림 안에서 그들의 천박함이나 바보스러운 선입견을 억지로 찾아볼 사람은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보이는 것과는 다른 이 둘의 모습. 인간적인 의미로 작품을 해석해 보면 상당히 순수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한 여린 두 사람. 소위 말하는 잘 팔리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고 자신의 처지에만 집중했던 두 사람. 누가 뭐라 해도 절대 흔들리지 않았던 예술적 신념을 지녔던 그들이었기에 그 신념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싶은 나머지 필자는 그들의 작품에서 고상함과 우아함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순수한 청년 있었던 에곤쉴레나 고통과 불안을 항상 함께하는 삶을 살았던 에드바르트 뭉크나 그들의 마음을 이렇게나마 위로해두고 싶었던 마음이랄까.
 
눈에 보이는 대로 믿거나 내 생각대로 추측하는 태도로 인해 우리는 잃을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닫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생각지 못했던 색다른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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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미 원장

덕원예술고등학교 미술과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무대미술과 졸업

무대의상디자이너 겸

입시미술 지도경력 다수

달리미술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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