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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이 좋다> 송탄청년회의소 박영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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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평택신문 │ 기사작성 2018-9-4 │ 조회96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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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탄청년회의소 박영진 회장
남보다 먼저 실천하여 모범을 보이는 삶,
이신작칙(以身作則)의 삶을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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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 평택동 농협사거리 인근 번화가에 ‘JC어린이 공원’이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공원이라 필자도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던 기억이 난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언젠가 공원 한편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했던 것도 같다. 대수롭지 않다는 것은 하찮다는 말과는 사뭇 다르다. 그보다는 우리 삶에 깊숙이 녹아들어 이질감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라는 것이 걸맞은 표현으로 보인다. 그렇게 ‘JC어린이 공원’은 우리 삶 깊숙이 녹아들어 있었다.

전국 어디를 가도 유사한 이름의 공원이 있다. JC공원의 ‘JC’는 Junior Chamber의 머릿글자를 딴 것으로 청년회의소를 뜻한다. 청년회의소라는 민간단체가 전국각지에 공원을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청년회의소에서는 왜 공원을 만들게 된 것일까? 역사는 1915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 미주리주에 살던 ‘페기’라는 소녀가 도로변에서 놀다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사고 장면을 목격한 은행원 기젠비어는 어린이들에게 공원을 만들어 교통사고를 예방하자며 의식 있는 젊은이들과 ‘진보적 청년시민협회(YMPCA)’를 만들었고, 이것이 JC의 모태가 되었다. 이후 1944년 멕시코에서 국제청년회의소(JCI)가 창설됐고, 한국에는 전후인 1954년에 정식으로 ‘한국청년회의소’를 창립해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한국청년회의소의 역사는 곧 송탄청년회의소의 역사이기도 하다. 6·25전쟁 기간이었던 1951년 평택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에 의해 국내에 소개됐고, 1952년 당시 영어 교사였던 서정빈을 중심으로 결성한 ‘평택청년애향사업회’가 한국청년회의소의 시초이기 때문이다. 한국청년회의소의 뿌리, ‘송탄청년회의소’의 박영진 회장을 만나봤다.  

선배들의 발자취를 따라 걷다보니 새로운 역할이 생겨

송탄청년회의소 사무국에서 만난 박영진 회장은 소탈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지역에서 운수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박 회장은 학창시절을 평택에서 보내고 서울로 상경해 한동안 직장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2008년 평택으로 돌아와 지금의 일을 시작했고 그 즈음 송탄청년회의소에 입회했다. 박 회장 주변에는 청년회의소에서 활동하는 지인들이 많았다고 한다. 자연히 박 회장도 지인들의 추천으로 입회를 결심했다고 한다. 거창한 삶의 목표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사회적 공헌에 뜻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등떠밀려 입회를 하긴 했지만, 무슨 일이든 대충 넘어가는 성격이 아니다 보니 누구보다 열심히 활동에 참여했다고 한다. 그렇게 멋모르고 시작한 일이 이젠 삶의 일부이자 목표가 되었고, 작게나마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사회적 공헌에도 일조하게 돼 뿌듯하다고 말하는 박 회장이다. 박 회장은 JC의 핵심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지역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고 싶다고 말한다. 박 회장은 “JC의 처음 출발부터 지금까지 선배님들이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헌신했던 역사를 소중히 생각한다”면서 “시대변화에 부응해 지역사회에 필요한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이 많다”고 했다. 최초 어린이 공원을 조성해 지역사회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던 것처럼, 시대변화에 발맞춰 청년실업의 극복과 어린이 범죄예방 캠페인, 문화예술행사 기획 등 청소년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청소년의 올바른 성장과 발달을 돕고 있다. 박 회장은 ‘청소년 상담교실’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박 회장은 “청소년들의 일탈과 탈선문제가 사회적으로도 큰 고민거리로 떠오르고 있다”면서 “청소년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의 고민에 귀기울이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바람직한 길로 들어서게 도움을 주고 그들이 다시 사회에 봉사하는 선순환이 중요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앞으로도 청소년 문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보겠다고 박 회장은 밝혔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그 끝은 분명 다를 것

박영진 회장은 우연한 기회에 입회를 하였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조직의 가치를 잘 이해하고 자발적이고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역 내에서 자신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자각이 그를 변하게 만든 것이다. 자신의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지역에 빚을 졌고, 이젠 그 빚을 갚기 위한 노력을 시작할 때라는 것이다. 송탄청년회의소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지역사회에 꾸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지역사회의 각종 문제점에 대해서도 눈뜨게 된 것이다. 지역의 다양한 문제점들과 현안에 대해 나름의 고민을 이어갔지만, 제 목소리를 내거나 실천으로 옮기기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한다. 일단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제한된 역할을 수행하는 정도였다. 박 회장은 회장임기동안 다양한 사회공헌사업을 기획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실천에 옮기지 못해 안타깝지만, 올 한해 남은 기간만큼이라도 목표한 사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해 유종의 미를 거둘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이처럼 박 회장은 10년이 넘도록 단일 조직에 몸담으면서 다양한 사업을 실무자로써 수행해왔다. 이제는 조직의 수장으로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중책을 맡고 있다. 박 회장은 지금껏 송탄청년회의소라는 조직의 굴래 속에서 활동해왔지만, 앞으로는 다양한 시민단체에서 활동을 해 볼 계획이라고 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단체는 그 이름만큼이나 다양한 목적활동을 하고 있다. 지역현안에 따라 목적단체에 힘을 보태주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라고 박 회장은 말한다. 박 회장은 “오랜 시간 단일 조직 내에서 쌓은 깊이 있는 경험과 노하우가 필요한 곳이라면 머뭇거림 없이 나를 던질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박 회장은 얼마 전 지역현안과 관련해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회의에 참석했던 이야기기를 들려줬다. 당시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고 한다. 불특정 다수의 지역민 모두를 위한 논의가 아닌 특정 소수를 위한 논의로 회의가 변질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지역민들의 희생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때의 경험은 박 회장이 지역현안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됐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 역할을 해야 한다면, 자신이 그 역할을 해낼 것이라고 말하는 박 회장이다.

박영진 회장은 보통의 범인(凡人)들과 다를바 없는 사람이었다. 거창하게 봉사와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저 지역사회, 나아가 우리사회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는데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누구나처럼 말이다. 하지만, 박 회장에게는 보통사람들과의 차이점도 분명히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외면하지 않고 실천하겠다는 의지가 그것이다. 마음만 먹고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박영진 회장의 ‘실천하는 삶’을 응원한다. 

구원서 ipt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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