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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 속 그림 읽기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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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평택신문 │ 기사작성 2020-2-3 │ 조회69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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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Who am I ?
내가 왜 사는가? 난 누구인가? 나는 어떤 존재인가?
How to live?
나는 어떻게 살고 죽을 것인가?

많은 예술가들이 글, 그림, 음악, 몸을 도구 삼아 자신들을 표현해 왔고 그런 작업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오로지 스스로를 중심에 세워두고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관계 안에서의 자신을 바라보는 시점을 표현하기도 한다. 자화상은 이처럼 ‘이렇게 그려야 한다’는 뚜렷한 정의는 없는셈이다. 공통점이라면, 자신의 삶이 투영되고 자신의 사상에 기반한다는 점.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사유(思惟)의 순간에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가 된다고 말한 데카르트의 말처럼 우리는 의식 속에서 스스로를 대변하려 한다. 필자 또한 이와 비슷한 생각에서 출발해 그림을 시작했다. 필자가 중학생 시절 어느 화가의 그림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던 순간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것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충격과 놀라움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나왔다.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저렇게 까지 표현 할 수 있을까?” 너무 노골적이고 야한듯하지만, 그것의 이면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 누군가는 해당작품의 작가를 성애자, 정신분열증 환자, 변태 등 갖은 치욕스런 수식어로 그를 멸시하고 있지만 어린 필자의 눈과 마음은 조금 다르게 반응하고 있었다. 작가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그의 고통이 내 뼛속까지 전해지는 기분이었다. 당시의 그것이 연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작품을 통해 자신을 불쌍히 여겨주기를 바랬던 것은 아니었을까.  

당시 필자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작품은 28세 젊은 나이에 스페인 독감으로 일찍 생을 마감한 드로잉 천재 ‘에곤실레’의 작품이다. 그의 자화상을 보자. 무엇이 느껴지는가. 해석은 각자의 몫이지만,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보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의 삶이 어땠는지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오곤실레는 일찍이 아버지와 형을 잃었다. 그것도 매독이라는 성병으로 인한 죽음이었다. 지극히도 사랑했던 가족을 매독으로 잃은 그의 허탈감은 얼마나 컸을까? 그래서 한평생 죽음과 성(性)이라는 의미가 그에겐 굉장히 두려운 공포 그 자체로 작용했을 것이다.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것들을 향한 고독한 외침, 그리고 그로인한 울림이 느껴진다.

혹여 그의 그림을 보고 그를 섹스(sex)광으로 봤다면 큰 오산이다. 그는 인간의 적나라한 몸을 비틀린 선으로 비정상적이게 그려내면서 죽음과 성(性)을 불가피한 유기적 관계로 표현했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림 그렸을 오곤실레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 표정, 몸짓. 어느 것 하나 정상적인 것이 없다. ‘약에라도 취해있나?’ 싶을 정도지만 그는 온전한 정신으로 그림을 그려냈다고 한다. 불안하고 튀틀린 선에서 그의 두려움이 느껴지는 듯하다. 죽음과 성(性)은 그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것, 피하고픈 처절한 몸부림이자 두려움을 화폭에 그대로 담아낸 듯하다. 작품 속에 그려진 그의 눈을 보라. 그는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내게 예술이 없었다면 지금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생을 사랑한다. 모든 생명의 깊이에 침잠하는 것을 사랑한다. 그러나 나를 원수 다루듯 사슬로 묶어 나 자신의 것이 아닌 삶으로, 즉 하찮은 가치밖에는 지니지 않고 그저 실리적일 뿐인, 예술이 결여되어 있고 신이 부재하는 삶으로 나를 몰아넣고자 하는 강제를 혐오한다…. 나는 모든 살아있는 존재의 심층으로 가라앉기를 원한다”
                                                          -1912년 4윌 27일 옥중에서-

그리고 여기 또 다른 자화상을 보자.


누구나 한번쯤은 봤을법한 작품, 자화상 하면 단연 첫 번째로 떠오르는 것이 윤두서의 자화상 일 것이다. 작품 속에 그려진 그의 강직한 눈빛. 범의 모습을 한 그의 모습은 당장이라도 보는 이를 해칠듯하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궁금하지 않는가? 먼저 조선시대 그려졌던 다른 자화상들을 보자. 확연하게 다른 무언가가 느껴진다. 윤두서, 그는 선비였음에도 선비다운 차림새도 아니고 그저 자신의 얼굴에만 집중해 그렸다. 왜 그랬을까?

비교적 젊은 나이였던 22세에 아내와의 사별을 시작으로 26년 동안 가족들과 친구들이 무려 아홉 명이나 죽었다. 그리고 진실이 왜곡된 역모에 휘말려 관모를 쓰지도 못했던 윤두서. 그는 시대가 낳은 비운의 선비였을 터 사랑했던 사람들의 죽음과 정치적 소용돌이가 만연했던 윤두서의 삶. 그때문에 30세에 이미 백발이 되었다고 전해지니 얼마나 고단한 삶이었을지 짐작이 된다.

그의 아들인 윤덕희(1685~1766) 그를 이렇게 회고했다. “아버지가 훤칠한 키에 도량이 넓어서 나이가 어렸을 때에도 사람들이 함부로 하지 못했고, 용모와 말씨가 중후하고 존엄하여 자연히 주변 사람들이 그를 존경했다” 이밖에도 윤두서를 기록한 글은 더 있다. 공재 윤두서 행장(行狀)중에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겨 묵은 빚 문서를 태워버렸다”고 전하고, 시행장에는 “감정을 억제하고 슬픔을 줄이려 하니, 머리가 반백이 되었으리...”고 전한다.

그를 묘사한 글과 그가 지은 시에서 그의 인품이 느껴지지 않는가? 자중자애(自重自愛). 자비(自卑)와 애민(愛民)의 마음으로 시대적 답답함을 시와 그림을 통해 스스로 위안하면서 그 안에는 강한 의지와 다짐이 그의 눈빛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안타깝게도 윤두서는 45세 자화상을 끝으로 3년뒤 감기로 세상을 등진다. 그림으로 그려내는 자화상은 사진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자신의 삶을 고스란히 다 녹여내어 눈빛, 입의 모양 그리고 배경 까지도 허투로 그리지 않는다. 그가 죽은 뒤 친구 담헌 이하곤은 애도하는 마음을 시로 전했다.

육척도 안되는 몸으로 사해를 초월하려는 뜻이 있네. 긴 수염 나부끼는 얼굴, 기름지고 붉어라, 바라보는자, 도사나 검객이 아닌가 의심하지만 저 진실로 겸양하는 기품은 무릇 독실한 군자로서 부끄러움이 없구나.

그는 어떤 삶을 살았는가? 우리는 왜 그의 자화상에 이토록 찬사를 보내며 경의를 표하는가?


그의 그려진 그림도 훌륭하지만 그것을 통해 그의 삶과 사상(정신)에 반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어떠한 환경에도 꺾이지 않는 대나무처럼 모든 희망이 사라진다 해도 그를 버티게 하는 힘이 무엇일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 ‘우리는 죽음을 미리 대면하며 살고 있는가?’ 죽음 이라는 건 피할 수 없는 겸허히 받아들여야 됨을 알면서도 피하고 싶어하는 두려운 대상. 윤두서는 관조적인 태도로 죽음을 바라보는 인물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죽음을 삶의 일부분으로 대하는 순간 삶의 질은 달라진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한다. 굳이 연구결과를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죽음을 미리 대비하고 겸허해 질 수 있다면 살아있는 동안 삶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고치속에서 나비가 나오는 것처럼 우리의 육신은 자기의 역할이 끝날 때가 오지만 나를 지탱하던 영혼은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다” -정현채 교수-

그림을 보는 관점은 누구나 다르며 해석 또한 제각각이다. 정담은 없다. 죽은자는 말이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았고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고민을 했던 사람들이었음을 기억하자. 그들의 생을 알고 작품을 바라보면 비로소 그들이 이해가 가고 그들과 교감할 수 있는 감정의 폭이 깊어질 것이다.

그림은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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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미 원장

덕원예술고등학교 미술과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무대미술과 졸업
무대의상디자이너 겸
입시미술 지도경력 다수
달리미술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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