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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일 행사, 세금 새는 ‘겉치레’ ‘눈치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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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평택신문 │ 기사작성 2016-8-11 │ 조회561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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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끌려가는 이유는 알려주셔야죠!”
행사장 자리 채우기 우선, 행사의미는 뒷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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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스런 점심식사를 마치고 식곤증이 몰려오는 나른한 오후다.
친구들의 뒤를 졸졸 따라서 체육관을 향하는 나의 이만치 튀어나온 입은 결코 까닭이 없지 않다. 가볍지 않은 마음으로 실내화를 질질 끌며 마지못해 체육관에 들어섰다. 본래 오늘 이 시간은 체육시간이었고, 나는 친구들과 함께 마음껏 체육관에서 뛰어놀아야할 시간이지만, 오늘 체육시간은 정체모를 행사로 인해 도둑맞았다.

 

며칠 전이었을까? 선생님들은 우리학교 체육관에서 무슨 행사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너무도 낯선 이야기라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독립운동가를 위한 기념식이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 그 독립운동가가 도대체 누구인지도 나는 알지 못한다. 그 낯선 독립운동가님(?)을 위한 행사에 동원된 우리는 체육관을 향해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체육관에 들어선 우리는 체육관 한켠에 마련된 무대를 향해 도열해 있는 의자에 앉혀졌다. 맨 앞자리는 비워두고 앉으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새삼 상냥하고 친절하게 느껴진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가 그렇게 앉기 싫어하던 맨 앞자리는 외부에서 오신 손님들을 위한자리였다. 앞자리에 앉는 것도 싫지만, 사진 찍히는 건 더욱 싫은 일이다. 하지만, 우리를 대신해 앞자리를 채워주신 분들은 사진 찍히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 눈치였다. 아니 굉장히 좋아하는 듯 보였다. 맨 앞자리에 앉아서 사진 찍히는 일을 좋아할 리 없지만,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물론 나는 어른이 되어도 싫을 일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행사에서 우리의 역할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보였다. 그냥 행사장을 향해있는 의자 뒤쪽에 앉아서 머릿수만 채워주면 되는 것이었다. 그 이상을 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고, 딱히 뭘 할 수 있는 여건도 아니었다. 자리에 앉혀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내 심심해졌다. 망설임 없이 옆에, 그리고 앞에 앉은 친구들과 잡담을 시작한다. 짓궂은 친구들은 행사안내책자로 비행기를 만들어 저 멀리 날려 보내는가 하면 또 다른 녀석들은 태극기를 돌돌 말아서 연신 서로의 옆구리를 찌르며 장난을 하고 있다. 키득거리는 소리와 웅성거리는 소리가 체육관을 가득 채웠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외부손님들에 의해 앞자리가 제법 채워지고 행사가 시작된다는 방송이 들릴 즈음 카메라를 들쳐 메고 있던 사람들이 연신 플래시를 터트려가며 부지런히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카메라의 방향이 무대가 아닌 객석을 향해있다는 점이었다. 오늘 행사가 중요한 것인지 오늘 참석한 사람들이 중요한 것인지 조금은 헛갈리는 부분이었다. 이런 상황들이 선뜻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늘 그렇듯 우리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분들이 우리를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는 것과 같은 이유로.

자리에 앉혀진지 30분 정도가 지나자 좀이 쑤시기 시작했다. “선생님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해요?”, “선생님! 누가 자꾸만 뒤에서 발로 차요”, “선생님 교실 가서 담요 좀 가져 올게요” 우리는 머릿수만큼이나 다양한 말들을 쏟아냈고 선생님은 난처한 표정으로 조용하라는 수신호를 보내면서 연신 “쉬~ 쉿!”이란 말을 반복한다. 분명 조용히 하라고만하셨지 행사에 집중하라고는 하지 않으셨다. 최대한 소리를 줄여 친구들과 장난을 치고, 잡담을 하는 것으로 선생님을 배려해줬다. 

 

행사가 시작된 지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앞자리에 앉아계시던 외부에서 오신 손님들이 우리의 소란함이 방해가 되었는지 몇 차례 일그러진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기도 하고, 혀를 끌끌 차며 미간을 찌푸리기도 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우리도 지금 상황이 불만이라 미간이 찌푸려지기는 마찬가지다. 까닭 없이 끌려왔고, 왜 이렇게 행사장 한켠에서 옴짝달싹 못해야 하는 건지 도무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문도 모르고 내키지 않는 자리에 앉아있으려니 짜증도 나고 앉아만 있으려니 좀이 쑤셔 견디기가 힘들다. 우리를 못마땅한 표정으로 보시던 분만큼이나 우리도 심기가 불편하다는 말이다.

장장 2시간 가까이 진행된 행사가 끝나고 안도의 한숨을 몰아쉴 때쯤 선생님은 우리가 얌전하게 굴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참을 나무라셨고 벌로 체육관내에 도열해 있던 의자를 정리하고 체육관을 청소하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불평 가득한 목소리로 야유해보지만, 이내 소득이 없을 것을 깨닫고 묵묵히 선생님의 처분을 따랐다. 의자를 창고에 잘 정리했고, 체육관 바닥도 깨끗이 청소했다. 이만하면 됐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떨어지고 나서야 체육관을 나설 수 있었다. 체육관을 빠져나오던 중 괜스레 무대로 다시 눈길이 갔다. 채 떼여지지 않은 현수막에는 ‘평택의 독립운동가 원심창의사 육삼정의거 83주년 기념식’이라는 글귀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다. “대체 원심창의사는 어떤 분이고? 육삼정씨는 또 누구지?” 나의 혼잣말을 질문인 냥 알아들은 친구도 고개만 갸웃대며 웃을 뿐 말이 없다.

 

길고 지루한 시간을 뒤로한 채 교실로 돌아온 우리는 또 다른 난관에 봉착하고 만다. 오늘 참석한 행사에 관한 ‘소감문’을 작성해서 제출하란다. 말 그대로 ‘난감한 상황’이다. 나를 비롯한 친구들은 이번행사가 무엇을 위한 행사이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는바가 없다. 오늘의 행사에 관해 어느 누구도 세심하게 설명하고 이해시켜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까닭 모르고 불려나갔다가 시간만 허비하고 돌아왔을 뿐인데 소감이랄 것이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어쩔 수 없이 ‘소감문’작성을 위해 황급히 인터넷을 뒤적여보기로 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오늘 기념식 현수막에 등장한 ‘원심창 의사’에 대해 새로운 사실들을 접하게 되었다. 그분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봉창 의사 의거와 윤봉길 의사 의거와 더불어 3대의거로 칭송받는 육삼정 의거를 주도하셨던 훌륭한 분이셨다. 그분은 비록 실패로 끝난 육삼정 의거로 인해 옥고를 치르시고 해방 후에야 풀려나셨다. 해방 후 6.25전쟁 때는 조국의 통일을 위해 쉼 없이 노력하셨던 위인이라고도 한다. 이토록 훌륭한 분이 나와 같은 평택에서 나고 자랐다는 것을 알게 되자 더없이 친근하고 한편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조급한 마음에 인터넷에서 찾아낸 글들을 짜깁기해서 ‘소감문’의 작성을 마쳤다.

 

부랴부랴 소감문을 제출한 후에야 한숨 돌리며 생각에 잠겨본다. 인터넷을 통해서 뒤늦게 알아낸 사실을 기념식 전에 진작 알았더라면 행사에 참석해 있는 동안 조금은 덜 지루했을까? 원심창의사의 업적과 행보를 기념식이 열리기 전에 알았으면 어땠을까하는 상상 말이다. 그러한 앎이 전제되었다면 오늘 기념식행사장이 조금은 덜 지루하게 느껴졌을 것이고,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기념식을 경청했다면 어쩌면 선생님께 꾸중 듣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 그렇게만 됐다면 선생님이 난처할 일도 외부에서 오신 손님이 혀를 끌끌 찰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선생님이, 끌려가는 이유를 제대로 알려주었으면 말이다.

 

 

구원서 기자 guwonse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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