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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영석의 대중문화예술 비하인드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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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평택신문 작성일18-06-18 10:56 조회1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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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예술 칼럼]

구영석의 대중문화예술 비하인드스토리  

제6장 ‘시대적 흐름에 따라 변화되어 온 추억의 대중음악’

연재되고 있는 본지의 지난 내용들을 보면 I-Dol(아이돌)로 되기 위한 과정과 그에 따른 관계 영역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그동안 다룬 내용들은 본 기자의 경험을 토대로 서술하였다.

본 기자는 본지의 내용들을 다루면 90년대에서 2000년 초반까지 스스로가 직접적인 Player로써 활동했던 당시를 되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연재되었던 내용들은 최근까지 I-Dol(아이돌) 제작부분에 몸을 담고 있던 터라 경험을 토대로 서술하였지만 이번 계기로 그 시절 연예계에 대한 부분을 돌아보고 현재 청소년들의 부모님 세대, 즉 30대 ~ 40대 시절의 추억 속에 흘러갔던 그 시절 연예계를 본 기자의 추억 속으로 들어가 다시 돌아볼 생각이다.

몇 년 전 방영되었던 드라마 중에 ‘응답하라 1998’을 계기로 대한민국은 한때 90년대 추억 속에 들썩인 때가 있었다. 이 후로 MBC 무한도전이란 프로그램에서도 다루었듯이 추억속의 가수들을 소환하여 모든 이들에게 애잔한 감동을 주었던 90년대의 대한민국 연예계는 지금의 세계적인 수준의 K-Pop 문화로 이끌어준 본격적인 계기가 된 시절이다.

본 기자는 어린 시절부터 직접 보고 느낀 90년대 연예계의 추억을 소환하여 우리 청소년들의 부모님 세대와 함께 공감 할 수 있는 내용을 다루고자 한다.

1990년에는 일본의 가라오케(Karaoke)에서 비롯된 노래방 문화가 대중적으로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가짜 오케스트라’라 하여 녹음된 반주로 누구나 마음껏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본 기자도 중학생 시절에 노래방을 처음 경험하게 되었는데 당시 90년대 초반의 노래방은 지금처럼 기기 내에 내장된 메모리나 하드디스크로 반주를 흘려보내는 시스템이 아닌 레이저디스크를 통해 반주가 흘러나오는 시스템 이였다. 그 때문에 노래방 카운터 한편에는 레이저디스크 플레이어들이 탑처럼 쌓여있던 것을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당시 노래방이 보편화됨에 따라 학생들의 취미 생활에는 노래방 문화가 자연스럽게 속하게 되었다. 주말이 되면 친구들 삼삼오오 모여 노래방에 가서 서로 노래를 뽐내고 당시 유행했던 노래를 하나둘씩 불러도 보고...
이렇듯 대중들에게도 노래를 부르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녹아든 것이다. 이전 세대들이 노래 클럽이나 혹은 통기타에 맞춰 노래를 부르던 시절과는 한층 업그레이드 된 셈이다. 이때부터일까?


당시 대한민국 음악계에서는 새로운 시도로 거친 행보를 달리고 있던 팀이 있었다. 바로 ‘서태지와 아이들’이다. 당시 들을 수 없었던 Sensation함과 동시에 가요계를 수준급으로 올렸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은 대중들에게 새롭게 다가온 것이다. 당시 노래방에 가면 여기저기서 들리는 노래가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가 독보적 이였던 것이다. 잠시 ‘서태지와 아이들’의 당시 음악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Rock 기반으로 만들어진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은 당시에 볼 수 없었던 화려한 랩핑에 마치 들어봄 직한 편안한 멜로디, 그리고 이어지는 하드한 사운드에 기타 소리가 일품이었다.

당시 본 기자도 노래방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음악을 찾아 듣게 되었고 점차 빠져들며 Bonjovi(본조비)와 Metallica(메탈리카)같은 당시 유명한 Rock, Metal 밴드 음악을 즐겨 듣게 되었는데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에 놀란 것은 Metal 사운드의 기타 소리가 댄스 음악에 결합이 됨으로써 놀라움을 처음 느껴본 것이다.

문화는 흐름이자 유행이다. 대중들은 열광했고 그 흐름에 대한민국은 댄스 음악에 전성시대가 오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댄스 음악의 전성기로 몰고 온 것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선두주자였던 것이다. 이에 파생되어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선보여 졌다. 댄스와 더불어 힙합과 락에 대한 장르도 한층 더 대중들에게 가까워 졌던 것이다.

당시만 해도 비주류 음악은 단순 마니아층에게만 인정을 받은 시대였다. 여느 외국 팀들과 견주어 봤을 때는 실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수준인데다가 이렇다 할 설 자리도 불분명한 시대였던 것이다. 물론 비주류란 것은 지금도 존재하지만 그 시절만큼 열악한 시대는 없었을 것이다. 그 비주류 음악을 뻗어나갈 수 있게 포문을 열어준 게 바로 ‘서태지와 아이들’의 공이 큰 셈인 것이다.


시대적으로 노래방이 보편화 되면서 더불어 Sensational한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으로 대중들로 하여금 문화의 수준이 바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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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이란 이렇다. 자연스럽게 접하는 것이다. 또한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본 기자도 대중음악에 빠져든 것도 노래방이 보편화된 시점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으로 시대적 문화의 흐름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녹아든 것이다.

당시에는 가수가 되기 위해 모인 곳이 노래방 이였다. 현재처럼 전문적으로 노래를 가르치는 학원이 없었기 때문에 또한 맘 놓고 소리를 지를 수 있는 공간이 유일하게  노래방 뿐 이였던 터라 가수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는 그 만큼 좋은 공간은 없었던 것이다.


본 기자도 한때는 가수가 꿈이었다. 가수가 되고 싶어 매일 찾은 곳이 노래방 이었다.
매일 새로운 음악을 찾아 가사 보며 멜로디 익히고 노래방으로 가서 반주를 켜놓고 노래 연습하던 시절. 지금 생각하면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가 노래방에 가면 반주가 흘러나오는 상황이 여간 신기한 게 아니었다.

사실 가수가 되고 싶은 친구들에게는 노래방이 좋은 연습실이 될 수 없다. 가수는 본래 노래를 할 때에 기본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또한 반주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의 목소리로 리드를 하고 반주가 따라오게 되는 개념으로 노래를 해야 하는데 노래방에서는 자신의 목소리를 재대로 들을 수 없다. 대부분 노래방에서는 마이크의 효과가 많이 들어 가있는 터라 넒은 목욕탕 효과에는 전문적인 수양을 쌓기에는 안 맞는 설정인 것이다. 노래를 익히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I-Dol(아이돌) 흐름이 아니었기 때문에 ‘서태지와 아이들’처럼 댄스 그룹과 달리 락 발라드 장르도 많은 사랑을 받아 왔다. 김경호, 김정민이 대표적이다. 또한 김민종, K2, 뱅크 등 락을 기반으로 한 발라드 장르는 댄스와는 달리 애창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한때는 그랬다. 당시에 노래방 애창곡으로 될 만한 곡들 위주로 제작하는 제작자들의 선호도는 대단했다. 이후 90년대 후반부터는 영상과 함께 visual(비주얼)적인 면을 많이 고려해 제작자들 사이에서 선호의 대상이었지만 90년대 중반까지는 항상 우선 순위로 두었던 것은 바로 노래방 애창곡으로 초점이 맞춰졌던 것이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온라인 유통 방식이 아니었기 때문에 노래방, 오프라인 음반 판매량으로 제작된 음반의 흥행도를 확인 할 수밖에 없었던 환경이었다. 또한 노래방뿐만 아니라 길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으로도 흥행도를 가늠할 수가 있었는데 빌보드 차트를 빙자하여 ‘길보드 차트’라는 약칭으로 거리에서 불법으로 복제된 카세트 테이프를 판매하는 노점상들로 인하여 흥행을 점 칠 수가 있었다.

노점상들은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 노점을 열고 하루 종일 새로운 신곡들 틀어 놓고 판매를 하는데, 사람들이 많이 찾는 가수의 음반 위주로 틀어버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홍보가 되는 셈이었다. 그때는 불범 판매 노점상에게도 가수의 앨범을 홍보하기 위해서 뒷돈을 챙겨주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계속 연재...
         
구영석 기자(dikymoh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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