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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바기 세상> 시대의 오류 ‘과유불급(過猶不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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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평택신문 │ 기사작성 2017-3-31 │ 조회221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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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바기 세상>

시대의 오류 ‘과유불급(過猶不及)‘

 


신라시대 거문고의 명인 백결은 가난한 음악가였다. 언제나 그렇듯 가난한 사람들에게 ‘명절’은 근심의 대상이다. 명절이 되자 이집, 저 집에 떡방아 찧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아내의 수심이 깊어 갔다. 이에 백결은 말없이 가야금 앞에 앉아 떡방아 소리를 연주하며 아내의 상심을 어루만져 주었다. 신라인들은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음악가 백결을 ‘선생’이라 불렀다. 누더기 옷을 입고 살았을망정 청렴한 그의 생활이 신라인들에게도 귀감이 됐던 모양이다.

그런가하면 고려의 마지막 명장 최영은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부친의 유언을 실천했던 청렴한 장수다. 무너지는 고려의 사직을 지키려 했던 노장은 자신이 키운 후배 이성계로부터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최영의 청렴한 정신과 기상을 애석히 여긴 이성계는 그가 죽은지 4년 만에 서둘러 복관시키고 손수 시호까지 내렸다.

‘청빈낙도(淸貧落島)’라는 말은 청백리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실천하려는 최고의 가치다. 세종 때 문신 유관이나 벼슬이 영의정까지 올랐음에도 청빈한 삶을 살았던 선조 때의 문신 이원익도 비만 오면 집에 우산을 받쳐야 했다. 뇌물을 안 받고 녹봉으로만 살았으니 낡은 고가를 수리할 돈이 없었던 것이다. 어느 날 유관은 자신의 처지가 그러함에도 아내에게 ‘우리는 우산이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찌 할꼬’라고 말했다고 한다. 지금의 논리로 생각해 보면 그런 남편 옆에서 참고 살았던 그의 아내 또한 예사사람은 아닌 듯싶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인문학자, 의학자, 저술가인 이황의 제자 서애 유성룡도 녹봉 외에는 뇌물을 받지 않아 항상 궁색하게 살았다고 한다. 언젠가 서애가 모함으로 파직당해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는데 한강을 건널 배 삯이 없었다. 그때 이를 딱하게 여긴 사람들이 엽전을 모아 한강을 건너게 했다는 일화가 전해지니 그의 청렴함을 가히 짐작할 만 하다.

조선시대 사대부가 청백리로 녹선(錄選) 되기 위해서는 매우 까다로운 조건들이 요구됐다고 한다. ‘청렴(淸廉)’ ‘절약검소(節約儉素)’ ‘준법(遵法)’은 기본적인 필요조건(必要條件)이었고, 보다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업적(業績)’이나 ‘실적(實績)’이 평가의 잣대로 작용했다고 하니 청렴하게 사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던 듯싶다. 그러나 좋은 일에는 ‘마’가 끼고,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한 법이다.


한나라 무제 때 조우(趙禹)라는 관료가 있었다. 그는 청렴한 생활로 어사(御史)에 발탁돼 여러 가지 법률을 제정했다. 특히 관리가 범죄를 보고 묵살하면 똑같이 처벌하는 ‘견지법(見知法)’을 만들어 관리들이 서로 감시하고 고발하도록 했다. 그러나 좋은 뜻으로 제정한 이 법으로 인해 한나라 사회는 각박해졌고 결국 법률창안자 역시 이 덫에 걸려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고 한다.


진나라 때 상앙도 ‘상앙(商?)의 악법’이란 고사를 통해 ‘아무리 좋은 법일지라도 백성들에게 가혹하면 그것이 독이 된다’는 것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다. 기원전 390년경에 있었던 요동태수 공손은 혹리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진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들었으나 엄격한 법집행이 백성들과 귀족들의 반발을 불러 결국 모함을 받아 사지가 찢겨 죽었다. 그런가하면 고대 중국의 청백리 공의휴 역시 혹리로 평가 받고 있다. 한 재상이 공의휴가 생선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생선을 보냈지만 이를 돌려보냈다. ‘생선을 좋아하면서 왜 받지 않냐’고 측근이 묻자 공의휴의 대답은 이랬다. ‘생선을 좋아하기 때문에 받지 않는 것이다. 지금 내 녹봉으로도 생선 정도는 얼마든지 살 수 있다. 그런데 생선을 받기 시작하다가 파면되고 나면 내가 어떻게 생선을 먹을 수 있겠는가?’ 이런 공의휴를 재상이 좋아할 리 없었다. 재상은 그가 너무 강직해 조정에 필요한 인물이 아니라고 판단, 기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영란법’이 시행 된 지 6개월여가 되어간다. 법이 시행되자 많은 사람들이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국민 여론도 긍정과 부정이 엇갈리면서 명암이 극명하게 나타났다.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됐던 화훼, 축산농가도 살아남기 위한 갖가지 움직임을 계속하고 있다. 여기에 억대 보상금을 노리는 ‘란파라치’들이 등장, 사회를 감시와 불신의 늪에 빠지게 하고 있다. 란파라치를 가르치는 학원까지 생겨났다니 점입가경이 아닐 수 없다.

청렴 공직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김영란법이 자칫 ‘혹리’의 부작용이나 ‘상앙의 악법’은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 일각에서는 공익을 위해 기부하는 일까지 권익위원회나 법률적 자문을 받는 사례가 생기고 있다. 안 주고 안 받자는 풍조로 인해 우리의 미풍양속인 인보상조(隣保相助)의 기풍마저 흔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예나 지금이나 공직자들에 대한 청렴요구는 다를 게 없다. 그리고 반드시 청렴해야 한다. 공직사회가 부패하면 나라의 장래는 희망이 없어진다. 그러나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는 법, 아무리 좋은 법이라 해도 부작용은 있게 마련이다. 기왕에 제정한 법이다. 그러나 ‘시행’만이 대수는 아니다. 지금부터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공직사회가 스스로 금도를 지키는 것이 가장 큰 성공의 열쇠가 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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