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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용기자의 또바기세상> 장수(長壽), 축복만이 아닌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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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평택신문 │ 기사작성 2017-8-11 │ 조회121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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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바기 세상>

 

 장수(長壽), 축복만이 아닌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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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한국 사회는 이미 ‘고령사회’가 되어 버렸다. 오래 사는 것은 분명 축복이지만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장수는 가족 상호 간에 고통을 주게 마련이다. 이제는 ‘노인 자녀’가 ‘노인 부모’를 봉양하며 살아야 하는 고령사회의 ‘복병’이 노년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2015년 자료에 의하면 60대 이상의 자녀가 팔·구순의 부모를 부양하는 이른바 ‘노·노(老老)부양’이 15만 가구에 달할 정도로 급증했다고 한다. ‘노·노부양’은 당사자들의 문제만이 아닌 국가적인 중요 현안이 되고 있다.

그런가하면, 노·노(老老)부양 가구는 양적 증가와 함께 가정해체의 주된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몸도 책임지기 힘든 나이에 어린아이와 같은 노부모를 수발해야 하는 일이 어디 그리 만만하기만 하겠는가. 더욱이 어느 집이나 노인 봉양은 남자가 아닌 여자의 몫이요, 대상 또한 대부분이 시부모이다 보니 여자 입장에서 본다면 늘그막에 가사 노동이 몇 배로 증가하는 격이 되는 셈이다.

사실, 여자 나이 50이 넘으면 세상에서 가장 꼴 보기 싫은 사람이 남편(?)이라고 한다. 오죽하면 남편을 일컬어 ‘집에 두면 근심덩어리’, ‘데리고 나가면 짐 덩어리’, ‘마주 보고 있으면 웬수덩어리’요, ‘혼자 보내면 사고 덩어리’, ‘며느리한테 맡기면 구박덩어리’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까. 내 몸 늙으면 옆에 있는 남편조차 부담스러운 법인데 늙은 시부모야 말해 뭣하겠는가.

언젠가 모 대학 사회복지학 교수의 특강에 참여한 적이 있다. ‘고령사회와 노인부양’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강의였는데 수강자 대부분이 백발성성한 어르신들이었다. 강사가 고령사회에서 젊은 세대와 함께 살아가는 법에 대해 한창 열을 올리며 설명하던 그 때, 중간 쯤 앉아 있던 할머니 한 분이 큰 소리로 언짢은 기색을 내비쳤다. 요지인 즉, ‘옛날에는 부모 봉양을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지금은 부모가 늙으면 짐짝 취급을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넋두리는 세상이 바뀌면서 효자, 효녀가 사라졌다는 안타까움으로까지 이어졌다. 생각해보니 마흔을 훌쩍 넘기고 오십 문턱에 다다른 필자에게도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자식이 많은 것도 아니고 달랑 아들 녀석 하나뿐인데 만에 하나 아들이 모른 척 한다면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아니겠는가. 일이 이쯤 되니 그동안 아들에게 잘 해준 일들을 기억 속에 저장해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씩 끄집어내 나를 홀대 하지 못하게 할 무기로 사용할 수 있다는 얄팍한 생각과 함께….

따지고 보면 ‘노·노부양’을 잣대로 효(孝)를 논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을 것이다. 과학문명이 발달하지 않던 시절에는 사람의 수명도 지금처럼 길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태어나 성장하고 결혼해 자식 낳아 키우는 과정에서 대부분 부모의 죽음을 맞이한다. 철들어 부모에게 효도하려 했으나 이미 돌아가셨으니 그 아쉬움은 말로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살아생전 다하지 못한 효도를 무덤 앞에서나마 행하겠다는 일념으로 ‘시묘살이’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백발의 자식이 혼신의 힘으로 버텨내며 더 늙은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 쉽지 않는 일이다. 그나마 ‘효’에 대한 개념이 남아 있기에 힘든 상황에서도 부모와 함께 하려는 늙은 자식들이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2014년 말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초고령인 85세 이상 노인이 49만 8321명으로 2013년에 비해 4만여 명 더 늘어났다고 한다. 하루 평균 116명이 초고령 노인으로 바뀌는 셈이다. 더욱이 앞으로 8년 뒤인 2025년이 되면 85세 이상 노인이 현재보다 2배가량 늘어날 것이라고 하니 결코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안정된 노후(老後)를 준비하지 못한 채 은퇴한 60, 70대 자녀 노인들이 팔·구순 부모를 모시고 사는 일은 경제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늙어갈수록 가난해지는 악순환 속에서 노인 빈곤은 노인 학대나 자살로 치닫기도 한다.
 
이제 국가가 나서야 한다. 더 이상 ‘노·노부양’문제를 개인적 가정사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지방자치단체 별로 노인 가정을 방문해 안부를 확인하는 돌봄 서비스를 확대하고 또래 집단의 장점을 살려 ‘노인 돌봄이’가 독거노인의 말동무가 되어 주는  ‘노·노케어’ 사업을 활발히 전개하는 등 노인 일자리 창출을 통한 자생력을 길러 내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 


물론, 제도적 해결책이야 정부나 지자체가 주도적으로 시행해야겠지만 종교나 사회단체를 비롯해 가정 내에서도 노인 복지 서비스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그리고, 누구나 노인이 된다. ‘장수’가 ‘비극’아닌 ‘축복’이 되기 위해서는 모두의 관심과 양보가 절실히 필요하다.

이보용기자 bylee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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