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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바기세상-바보 같은(?)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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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평택신문 │ 기사작성 2017-10-16 │ 조회358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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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용기자의 또바기세상 >

 

바보 같은(?)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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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정월 15일은 ‘설’과 더불어 우리 민족이 즐겨온 가장 큰 명절 중 하나인 ‘추석’이다. 섣달 음력 초하룻날부터 열다섯 째날 음력 15일의 대보름날은 그해 제일 큰달이 뜨기 때문에 붙여진 말이다. 때문에 ‘추석대보름’이라 일컫지 않고 ‘한가위’라 부른 것인지도 모른다.

예로부터 정월대보름날은 달맞이와 들불놀이, 달집태우기, 벼낟기리쌓기 등 새해를 맞아 풍년이 들기를 바라는 여러 가지 민속놀이와 푸짐한 명절음식을 만드는 의식행사가 행해졌다.


이와 관련해 옛 문헌에는 농사를 짓는 집들이 해질 무렵 홰를 볏짚으로 만들고 불을 붙여 떼 지어 달을 향해 달려가는 것을 ‘달맞이’라고 일컬었다고 전해진다.
횃불에는 새해 신수를 예언하고 풍년들기를 바라는 우리의 소박한 마음이 담겨져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보름이 되면 동네처녀들의 널뛰기, 아이들의 연날리기나 연 끊어버리기, 다리 밟기, 놋다리놀이, 바람개비놀이, 수레싸움놀이, 패싸움놀이, 윷놀이, 제기차기 등 전국방방곡곡에서 약속이나 한 듯 행사 치르기에 분주했다.
이상한 건, 어느 것 하나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두레’의 성격을 띤 놀이라는 것이다.

얼마 전 필자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서 주관하는 추석맞이 ‘논산 두레 풍장’ 공연을 관람할 기회가 있었다. 공연을 주관하고 해설하는 은사님의 호출을 거절하기 어려워 부득이 참석한 자리이기도 했다. 물론, 전부터 접해오던 예의 그렇고 그런 ‘농악 공연’의 하나임을 의심치 않으면서 말이다.

얼굴에 분칠을 하고 오방색 띠를 두른 농악패의 모습을 상상하고 참석했던 필자의 눈이 의심스러웠다. 하나같이 촌스럽고 순박하며, 꾸밈없는 모습이 ‘광대의 자태’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검게 그을린 얼굴사이로 깊게 페인 주름, 땀에 쩐 흰색 무명옷과 짚신, 질근 동여맨 머리끈 사이로 삐져나온 은빛 머리카락을 보며 ‘과연, 저 분들이 교수님께서 그렇게 칭찬하시던, 그런 공연패란 말인가!’라는 섣부른 선입견이 발동했다.

“저 할아버지들이에요?”라는 필자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 없이 꽉 찬 미소를 머금던 은사님의 마음을 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상쇠의 쇳가락 소리를 시작으로 북과 장구, 징의 어울림 한마당이 시작됐다. 잔잔한 봄바람을 연상케 하는 속삭임 소리부터 우레와 같은 강열함을 나타내는 절정의 소리까지 1년 4계절의 변화무쌍과 인생사 희노애락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었다. 농악도, 국악도, 흔한 텃밭의 농사조차 알지 못하는 필자였지만 강신(降神)의 순간을 경험하듯 얼굴이 화끈거리고 심장 박동은 빨라졌다. 나도 모르게 손과 발이 움직였다. 어르신들의 가락에 몸이 먼저 반응하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건 논산 두레풍장의 모든 공연은 제자리에 서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화려하게 상모를 돌리는 ‘잽이’도 없고, 분위기를 띄우는 화려한 복장의 아낙들도 없다. 그저 마을 농꾼 예닐곱이 모여 서로의 노고를 위로하는 자리이다. 실제, 이날 공연을 펼친 어르신들은 모두 두레를 통해 알게 된 마을 농꾼들이란다. 우연히 민속학자들의 채록 기행에서 눈에 띄어 본격적인 ‘공연’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땀에 젖은 온몸, 자신의 몸 보다 무거워 보이는 북과 장구를 든 모습은 힘에 부쳐하는 백발노인의 모습이었지만 가락이 펼쳐지는 그 순간만큼은 여느 아이돌 공연 못지않은 열정과 힘이 발휘됐다.

사실, 어르신들의 공연모습을 보면 ‘과연, 농사의 고단함을 달래기 위한 놀이가 맞는가?’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만큼 풍물을 치는 그네들의 모습은 힘겨워 보였다. 대단한 체력과 열정이 없다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누구하나 힘든 얼굴을 하는 이는 없었다.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얼굴처럼, 넘침도 모자람도 없는 은근한 즐거움과 행복이 얼굴 가득 묻어났다.

‘두레의 힘’일 것이다.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한 ‘공동의 힘’, 그것이 어르신들로 하여금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게 한 건 아닐지….
두레는 한국 사회에서 노동을 함께 나누는 공동 노동 풍습이고 풍물은 ‘꽹과리, 징, 장구, 북’을 이용해 행해지는 놀이다. 우리 조상들은 풍물놀이를 통해 노동에 활력을 불어 넣고, 이것을 ‘두레 풍물’로 발전시키며 삶의 고단함을 함께 극복해 왔다.

각박한 세상이다. 경제는 날로 어려워지고 미래는 불투명한데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감마저 감돌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나’아닌 ‘옆 사람’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결코 우리는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힘들고 고된 삶이지만 ‘함께’하는 힘을 통해 ‘놀이’로 표현하며 삶의 무게를 이겨내려 했던 그네들의 바보 같은 지혜(?)를 닮는다면, 그래도 조금은 살아낼 힘이 생기지 않을까.

이보용 기자 bylee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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