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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바기세상>세상을 만드는 생애담 ‘고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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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평택신문 │ 기사작성 2017-10-30 │ 조회393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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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만드는 생애담 ‘고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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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형님 사촌 형님 시집살이 어떱디까/이애 이애 그 말마라 시집살이 개집살이/앞밭에는 당추 심고 뒷밭에는 고추 심어/고추 당추 맵다 해도 시집살이 더 맵더라.’

시집살이의 고단함을 이야기할 때 자주 인용되는 이 민요는 경북 경산 지방 부녀자들에게 구전되는 ‘시집살이 노래’다. 유교 윤리가 강하게 지배하던 시절 여성들의 시집살이는 고되게 마련이었다. 시집 식구들과의 불화, 생활고, 남편과의 갈등, 친정을 그리워하는 마음 등 애절한 이야기를 담은 조선시대 여인들의 시집살이 노래는 작자가 불분명한 채로 각 지방에서 전해왔다. 다른 인생을 살던 사람들을 한순간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엮는 결혼제도의 특성상 언제나 아름다운 화음만 연주될 순 없을 테다. 그러니 세월이 흘러도 끝나지 않는 고부전쟁에 대한 이야기는 오늘에 이르러서도 구구절절 이어진다.

추석 명절을 앞둔 어느 날, 시월드 챙기기에 부담스러워하는 며느리들의 푸념(?)을 담은 기사 한 편을 읽었다. 전업주부는 말할 것도 없고, 직업 전선에 뛰어 들어 눈 코 뜰 새 없는 나날을 보내는 여성들조차 예외 없이 겪어 내야하는 시월드의 ‘갑’질은 가부장재의 건재를 여실히 증명하는 현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며느리 노릇’이 어색하기는 결혼 25년차인 필자도 마찬가지다. 남편이 외아들인 탓에 주말마다 평택과 서울 시댁을 오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있지만, 개인적인 일로 인해 한 주라도 빠질라 치면 언짢아하시는 시부모님의 표정을 피할 길이 없다. 아들 내외와 하나뿐인 손자를 보고 싶어 하는 시어머니 마음은 알겠지만, 며느리는 ‘가족’이 될 수 없다는 서운함이 밀려들 때면 결혼 생활의 무게가 부담스럽기만 하다. 정말 가족이라면 회사 일에 지쳐 피곤할 때만이라도 눈치 보지 않고 쉴 수 있어야 하고, 힘든 내색도 할 수 있어야 할 텐데 아직도 여전히 눈치가 보이는 걸 보면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바뀌지 않는 ‘무엇이’ 있는 듯하다.

‘며느리’가 가족이 아니면 무엇일까. 시어머니를 대할 때 마다 직장 상사를 대하는 것 같은 긴장감에 지나친 예의를 차리게 된다. 마음속에서부터 가족이라는 기대가 없으니 자기방어적인 모습을 취하는 것이다. 자칫 꼬투리라도 잡히면 여지없이 이어지는 ‘을’의 한스러움을 미리부터 피하기 위해서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적당한 거리와 적당한 예의가 오히려 시어머니와의 관계를 편하게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런 불편함은 며느리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갈수록 시어머니도 며느리의 눈치를 보게 된다. 남편 또한 양자 사이에서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시어머니나 남편이 겪는 스트레스는 며느리의 ‘그 것’과는 차이가 있다.

지금의 60-70대 여성들은 ‘낀 세대’다. 가부장제의 ‘며느리 노릇’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마지막 세대이며, 자신의 며느리들에게 마냥 ‘며느리 노릇’을 요구할 수만은 없는 첫 세대다. 아내와 엄마, 며느리로의 정체성으로 30년을 넘게 살았던 이들에게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앞세운 며느리들은 ‘낯선 존재’일 것이다. 그러다보니 60-70대 시어머니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며느리 노릇이 편했다’는 자조가 나오는 것일 게다. 자신이 당한 대로 ‘매서운 시어머니’ 노릇을 하기도 어렵고, ‘쿨한 시어머니’ 노릇을 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인정받는 며느리 노릇도, 대우 받는 시어머니 노릇도 할 수 없는 여성들은 ‘팔자’를 핑계 삼아 순응하며 살아간다.

필자역시 50을 코앞에 두고 있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며느리도 보게 될 것이다. 이도 저도 장담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나 역시 며느리와의 관계 맺기가 우리네 어머니들과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이상한 노릇이다. 세상은 변하는데 ‘고부관계’의 근본 양상은 변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이어져 왔다. 비슷한 속사정을 되풀이 하면서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또 그 아이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는 일은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고된 시집살이 이야기, 시어머니와 며느리들의 설전에 사람들이 귀 기울이는 이유는 시집살이야 말로 ‘고난과 극복’을 통한 여성들의 ‘생애담’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생애담에 스며든 일상의 크고 작은 갈등이 모여 하나의 역사가 되고, 문학이 되고, 삶이 되어 이어진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그들의 삶이 곧 세상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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