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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톡! 육아칼럼 <국제대 이동석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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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평택신문 │ 기사작성 2018-5-27 │ 조회213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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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톡! 육아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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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대학교 이동석 교수


현 국제대학교 아동보육과 교수

현 국제대학교 현장실습센타 현장실습책임교수
현 한국아동미술학회 이사
현 평택시 보육정책위원회 위원
국제대학교 아동지도계열 계열장 역임
국제대학교 국제교류센타 센타장 역임 

 

엄마와 아이의 분리에 대한 라캉의 해석

 레비나스의 '얼굴의 현현'이란? 개념이 있다. 얼굴의 현현이란 보여 지는 인상이 곧 그 사람의 존재양식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얼굴과 타자의 얼굴이 교차되면서 타자와의 관계가 성립되고 타자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때 누가 강자가 되고 약자가 되는 복잡한 과정이 연장된다. 이와 같이 타자와의 소통은“환대”라는 매개를 통해 이루어진다. 부모와 아이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환대'라고 하는 것, 즉 진심으로 타자와 동일시 되어보고 느껴지는 것,? 데리다가 주장한 개념이지만 우리는 정말“환대”를 모르고 지내고 있다. 사랑을 설명할 수 있는가, 나는 정말 나 이외의 타자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가, 엄마는 자신의 소중한 자식에 대해 얼마나 소중한지 설명가능한가, 아니면 극단적으로 나만 주관적인 존재이고 나 이외의 대상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하나의 표상으로 보이는 것이며 가식적으로 상대방에 맞추고 있는 지도 모른다. 세상이 그렇게 보이지 않는 손으로 조정하고 조정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항상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함과 동시에 타자와의 존재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한다. 타자가 강한 것인지 약한 것인지, 자신이 강한 것인지 약한 것인지를 갈망하면서 이런 타자와의 주사위게임이 학생들과의 상담에서도 작용하는데, 교수는 항상 정상이고 옳으며 학생은 항상 뭔가 결핍된 존재로 우리 사회가 무의식적으로 명명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어머니들도 마찬가지이다 이 사회적 현실 속에서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지 어떻게 구별할 수 있겠는가?

 어머니의 아이에 대한 지시와 사랑은 정상이고 아이가 금지당하고 있는 사회적 현실은 비정상일수 밖에 없다고 우리는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인가? 어쩌면 우리의 자녀들은 부모의 욕망을 위해 길러지고 행동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것이 “우리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라는 라캉의 개념이다. 

 

나는 정의(올바름)의 문제에 있어서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아이는 부모의 정보 속에서 살아간다. 아이는 이 세상의 많은 정보를 접할 기회를 대부분 상실하는데, 그 이유는 부모의 정보만을 공유하게 되는 구조적특성 때문이다.

그러나 부모가 가지고 있는 정보와 그 내용의 충실함과 진정성은 검증되지 않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땅 면적은 작고 인구밀집이 심한 대도시 중심의 사회에서는 간섭의 문화가 마치 정의로운 것처럼 여겨진다. 즉, 부모의 정보는 부모자신이 검증한 정보가 대부분이 아니라는 것이고 부모 자신도 이것을 감지하지 못한 채 아이를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될 것이다.  


 서구사회의 문화 속에서 우리는 그간 과학의 눈부신 발전과 교육의 성과를 이루어냈다. 이것은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물질문명의 한 부분이고 그렇지 못한 아프리카의 미개한 부족들은 그렇지 못할 것이고 실재로도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미개한 부족도 아주 합리적인 사회와 질서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 레비스트로스(야생적 사고)를 통해서 자각할 수 있었다. 우리 아이도 소소한 문제로 말미암아 아이가 지금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지만, 사실 이는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아이들도. 나름대로 굉장히 분석적이고 바쁘고 나름의 질서가 있다는 것을 부모도 인정해야 하겠다. 과학 심리적으로 아이의 정동(감정 슬픔 기쁨 분노 수치심 자부심등을 나타내는 것)은 생후 3세가 되면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과 그렇지 못한 행동의 구별이 가능해진다 따라서 “정의는 반드시 이것이다”라고 결론은 피하기를 바란다. 


 우리를 감싸고 있는 사회적인 현실은 해석의 현실이다. 이것이 항상 많은 문제를 야기하는데 예를 들어 아이의 모든 교육이나 심지어 놀이에 이르고 있는 다양한 지적 동적 활동까지 해석과 끓임 없는 게임을 하고 있다. 엄마들은 우리아이에 대해 해석만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해석이 끝나고 새로운 충동이 아이에게 제시 되어야 하는데, 문제는 또 다른 해석의 영역으로 이끌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지 우리의 부모님들은 곰곰히 생각해 보기 바란다.

과거의 역사 속에서 있었던 당파싸움의 연장이 우리의 개인에 침투되어 버린 것일까? 최근에 나는 이러한 것에 불안과 초조함이 자녀의 교육에 있어서 제일 먼저 느껴진다 해석을 넘어 우리는 자녀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해석이 또 다른 해석을 낳지 않기 위해 실천을 해야 하겠다. 실천은 중용의 미학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가 봄날에 제비가 온다고 하여 봄이 온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만큼 실천은 그동안 우리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좌지우지된 우리들의 교육현실로 인해 해석에 깃들여져 있어 어떻게 우리아이를 위해 실천을 해야할지 불안해하며 어머니의 욕망만을 아이가 실현하도록 가르친다. 라캉은 어머니가 아이를 삼킨다 는 표현을 했다.

엄마는 아이를 엄마의 욕망의 주체에서 충동의 주체로 만들어줘야 한다. 이것이 실천이다. 아이가 충동을 넘어 자신의 주체로 갈 수 있게 인도해주고 충동을 넘어 환상의 횡단열차를 타고 아이 자신의 주체를 형성할 수 있게 부모님들은 손을 놓아주어야 한다. 엄마의 욕망에 의해 살아가는 아이는 어른이 되면 그 주체와 태도가 이미 굳어져 다시는 아름다운 충동의 과거로 갈 수 없다는 것을 되새기면서 아이에게 실천이 무엇인지를 엄마 스스로가 많은 고민과 공부가 필요하다고 본다.  


 아빠의 역할도 굉장히 중요하다. 아빠는 집안에서 유일하게 집안의 규율을 정하는 상징적인 존재이다. 라캉의 표현에 의하면 이것을 “부권적 기능”이라 한다. 아빠는 엄마와 아이의 분리의 역할을 꼭 해주어야 한다. 어릴 때 분리가 일어나지 않으면 아이는 엄마의 욕망으로 살아갈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하겠다.

부권적 기능은 어중간한 것은 없다. 분리가 있거나 아니면 아예 없다. 엄마들은 아이의 교육과 육아에 아빠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부부간에 충분한 논의를 하기를 바란다. 어중간한 아빠 존재의 각인은 어른이 된 아이에게는 다소 위험한 일이다 아직까지 “아버지의 부권적 기능보다 자녀에게 뛰어난 기능은 없다”라는 라캉의 개념은 필자는 공감한다.“자녀의 모든 문제는 아빠에게 있다”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은 아니다. 


 요즘은 한 부모 한 자녀가 특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너무 소중한 자녀가 되어버렸다. 즉 자녀와 부모의 분리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 나는 위에서 언급한 봐와 같이 나의 글이 극단적인 예시와 방향으로 몰고 갔다고 부정은 하지 않지만, 부모님들에게 이 한마디는 하고 싶다. 우리 아이들이 자기자식 다른 자식과 비교해서 문제가 많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정상이고 비정상인 것도 정상인 것도 다 우리가 만들어놓은 미 검증된 진리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를 위해 중용의 미학을 실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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