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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진의 지리산 종주기-‘인(忍)’과 ‘한(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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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평택신문 │ 기사작성 2018-5-14 │ 조회93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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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독자기고-서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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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D상호신용금고(저축은행) 대표이사


서동진의 지리산 종주기-‘인(忍)’과 ‘한(汗)’


살기 위해 지는 등짐, 죽을 만큼 무거워
육체적 고통 절정일 때야 터지는 탄성
삶은 치열하게 ‘살아내야 하는 것’
자신을 지켜 낸 대가의 ‘황홀함’ 깨달아


대원사 길 굽이돌아 물길 우람찬 계곡을 는실난실 걸어 오르니 어느덧 유평 마을에 다다랐다. 지리산의 초입이자 백두대간의 종착점, 이곳에도 어김없이 신록은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여러 종류의 ‘지리산종주’ 중에서도 감내해야 할 심신의 고통이 가장 크다는, 이른바 ‘대화종주’를 하기 위해서였다. 경남 산청군에 소재한 대원사를 출발하여 1915미터의 천왕봉을 오른 다음, 굽이진 능선 길 120리를 걸어 전라남도 구례군의 화엄사로 내려오는 길이다. 살기 위해 져야 할 등짐이 죽을 만큼 무겁다.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는 ‘도꾸가와 이에야스’의 말이 떠올랐다.

영혼의 설렘, 육신의 고통에 대한 두려움

속(俗)을 떠나는 승(僧)의 마음이 이러할까. 내 마음속에는 미지의 세계에 발을 내딛는 영혼의 설렘과 이제 곧 시작될 육신의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교차하고 있었다. 자처한 고행에 대해 ‘왜?’ 라는 질문은 뜬금없고 부질없다. 속세를 떠나기 위해 사립문을 나서는 이에게 그 이유를 묻는 것과 비슷한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날, 굵은 땀방울을 훔치며 지리산의 속살을 뚫고 진군하던 친구가 갑자기 거친 호흡을 내뿜으며 비명처럼 외치던 그 한 마디, 심산유곡의 골짜기를 타고 마치 선승의 오도송(悟道頌)처럼 울려 퍼졌던 그 메아리가 바로 이유라면 이유가 아니겠는가.

무한불성 무인불승
無汗不成 無忍不勝


땀을 흘리지 않으면 이룰 수 없고 인내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

하늘은 맑았지만 치밭목 산장을 지나 써리봉 중봉을 거쳐 천왕봉에 이르는 길은 거칠고 가혹했다. 육신을 밀어올리기 위해서는 마신 물이 땀이 되어야 하고 의식은 인내로 가득 채워야 한다. 忍이 없으면 지탱할 수 없고 汗이 없으면 나아갈 수 없으니 사실 우리는 산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산길에 매달려 있었다. 忍과 汗이 고갈되면 지리산에 감금되고 말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물을 마셔야 했고 끊임없이 땀을 쏟아내야 했다. 몸은 그저 정수기에 불과했다. 그 두텁던 뱃살조차 서서히 숨이 죽어갈 무렵 우리는 천왕봉에 도착했다.

나는 지금 여기에 있는데 내 기상은 어디에!

가슴은 뭉클했지만 근거는 부족했다. 나는 지금 이곳에 서 있는데 여기서 발원되었다는 ‘나의 기상’은 어디로 가버렸나. 세월에 의해 휘발되어 버렸는가, 삶의 무게에 짓눌려 마모되어 버렸는가, 아니면 스스로의 만용에 의해 증발되어 버렸는가. 여기서 발원되었다는 내 기상의 행방이 묘연하다. 잔뜩 꼬여져 있는 내 심사가 가엽다.


제석봉을 지나 장터목으로 향하는 길 양옆에는 수명을 다한 주목(朱木)들이 성글게 서 있었다. 살아 천년 죽어서도 천년을 견딘다는 주목, 그렇다면 저들은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인가 아니면 죽었다고 할 것인가. 마치 사람들의 눈요기 감이 되기 위해 죽어서도 편히 눕지 못하는 운명인가 싶어서 마음이 처져진다. 꼿꼿한 자태가 아무리 보기 좋은들 썩지 않는 시신을 두고 어찌 아름답다고만 할 것인가. 나는 저들이 제대로 죽어서 지금이라도 해까닥 나자빠졌으면 좋겠다.


저녁 해거름이 훌쩍 지나서야 겨우 세석산장에 도착했다. 10시간 동안 20km를 걸어 이곳에 도착했지만 쏟아지는 별빛과 가슴마저 시리는 차가운 밤공기와 장엄한 적막감 이외에 별다른 보상은 없었다. 온몸이 녹아내려 잠은 이내 들었다.


이튿날, 새벽 운무가 세석평전을 휘감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이곳은 들꽃 세상이었다. 자욱한 안개 속으로 옅은 바람이 스며들자 싹을 내민 어린 들꽃들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동네 아낙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남편 흉을 보며 재잘대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걸어내야’ 하는 것

다시 서쪽으로 출발했다. 우리가 출발할 즈음 동천(東天)의 해도 서진(西進)하기 시작했고, 밤이면 푸른 달빛이 머문다는 벽소령에 도착했을 때 해는 중천에 떠서 산하를 달구었다. 설익은 더위에 길게 널브러진 지리의 능선 위를 우리는 걷고 있었다. 산길은 인생처럼 태연해 보였지만 걸음은 현실처럼 갈수록 위태로웠다. 등짐에 짓눌린 걸음은 어금니로 견뎌야 하고, 물집이 잡힌 걸음은 얼굴을 찡그려 진통시켜야 하며, 발톱이 흔들리는 걸음은 신음과 속울음을 섞어 마취시켜야 했다. 이 산길에 결박당하지 않으려면, 또한 이대로 지리산에 감금되지 않으려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걸어야 한다.


삶은 저절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치열하게 ‘살아내야 하는 것’처럼 ‘걷는 것’ 또한 그냥 ‘걸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이 있어도 ‘걸어내야 하는 것’이다. 산길로 접어든 이상 걸어야 하는 것은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살아내야 하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 거림, 백무동, 의신, 음정, 뱀사골, 피아골….


천왕봉에서 성삼재에 이르는 주능선 양옆으로는 하산 길의 유혹이 마치 실핏줄처럼 곳곳에 뻗어 있었다. 연하천 산장에 이를 즈음 노고단까지 아직도 13km나 남았다는 이정표 앞에서 한 남자가 맥락 없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한참 동안이나 망설이던 이 양띠의 중년은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기어이 음정으로 하산했다. 그는 2박 3일 동안 지리산을 떠돌아다녔지만 끝내 자신의 목표를 이루지 못하였다. 돈과 여자가 없는 산길에도 유혹은 독사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힘들다고 주저앉아 버릴 수 없는 인생

우리는 못됐게 치솟은 토끼봉을 거북이가 기어오르듯 올랐다. 또한 반야봉 아랫길을 정신 나간 중처럼 허우적거리며 겨우 올라섰다. 우리는 기진맥진했다. 뒤를 돌아보니 20kg의 등짐을 지고 1500m를 올라 30km를 걸어왔다. 가야 할 길이 아직 20여km가 남은 데다 흐물흐물하던 발톱마저 빠져버린 듯 내딛는 걸음마다 아린 통증이 엄습했다. 우리는 지리산에 체포되기 직전이었다.


앙다문 친구의 입술 위로 굵은 땀방울이 우두둑 흘러내렸다. 나와는 달리 친구는 학창시절부터 암팡졌다. 성정에 걸맞게 그의 장딴지와 종아리는 굵고 실했으나 내 것은 그다지 눈에 띌 만한 물건은 아니었다. 그런 그가 먼저 일어섰기에 그저 그런 나도 따라 일어설 수 있었다. 우리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어쨌든 여기서 탈출해야 했다. 힘든 인생이라고 그냥 주저앉아 버릴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천신만고 끝에 능선 길의 마지막 기착지인 노고단 산장에 도착한 다음 화엄사로 내려가는 하산 길로 접어들었다. 남은 거리는 6km에 불과했으나 문제는 누더기가 되어 버린 몸이었다. 너덜너덜해진 발바닥과 발톱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사타구니 주변의 모든 마찰 부위가 심하게 짓물러 따갑기 짝이 없다.

스틱을 쥔 양팔에서마저 경련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미동하는 순간조차 고통인 상태에서 돌무더기로 가득 채워진 급경사 길을 두 시간 이상 내려가야 한다. 고통스러웠다.

무한불성 무인불승(無汗不成 無忍不勝)!

하산 도중 친구는 가끔씩 괴성을 토해내곤 했다. 이 괴이한 함성은 육체적인 고통이 절정에 달했을 때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절규였다. 그 속에는 ‘무한불성 무인불승(無汗不成 無忍不勝)’이 진하게 농축되어 있음을 나는 안다. 종주 동안 이 고독하고 순결한 외침을 여러 번 들었다.


나는 울고 싶었지만 어른이어서 울지 못했다. 살면서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지라 많이 아파도 참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많이 울었다. 이 또한 살면서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사실 나는 아파 죽을 것 같았다.


정신조차 혼미해질 무렵 멀리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왕대밭 너머로 화엄사의 지붕이 눈에 들어왔다. 화엄사로 이어지는 계곡을 건넜으니 이제는 다 왔다. 오늘 하루도 12시간 동안 30km를 걸었다. 우리는 그제 서야 환히 웃었다.


우리는 중력을 뚫고 천왕봉에 올랐으며 중력을 헤치며 능선 길을 걸었고 온몸으로 중력을 떠받치며 화엄사로 내려와 지금 이 자리에 섰다. 그동안 우리가 한 것이라고는 오직 하나 뿐, 무슨 일이 있어도 견뎌내는 것이었다. 짓누르는 중력의 고통과 하산의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낸 대가는 크고 황홀했다.


행여 그대는 지금 자신의 삶을 짓누르는 중력에 힘겨워 주저앉아 울고 있지는 않는가?
아무리 큰 고통과 유혹이 닥쳐도 꿋꿋하게 ‘견뎌내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승리요 당신이 일구어낸 가장 큰 업적임을 잊지 마시라. 다시 한 번 바라건대 절대로 잊지 마시라.

아침부터 우리와 동행했던 태양도 이제 서녘하늘로 넘어갔다. 다리 난간에 앉아 내려왔던 계곡을 뒤돌아본다. 곧 계절이 바뀌면 이 아름다운 화엄사 계곡은 우람찬 물줄기를 쏟아내며 세속의 고단한 삶에 지친 사람들의 안온한 휴식처로 변할 것이다. 그때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다시 한 번 이곳에 들러보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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