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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칼럼> 자연이 주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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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평택신문 │ 기사작성 2020-9-14 │ 조회11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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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주는 힘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교향곡 6번 ‘전원’(Pastorale) Op.68

“전원에서는 모든 나무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듯하다. 거룩하게, 거룩하게! 숲은 황홀하다
누가 감히 이런 것을 표현할 수 있을까? -1815년 베토벤이 쓴 메모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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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봄부터 등산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헬스장 대신 몇 번 오르다가 이제는 주기적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될 정도가 됐다. 혼자서 산에 오르는 일이 대부분이다. 발끝부터 전해오는 땅의 기운을 느끼며 내가 원하는 보폭과 속도로 산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일상에서의 스트레스와 마음의 짐들을 내려놓고, 복잡하게 헝클어진 머릿속 잡념들도 털어낼 수 있는 산은 어느새 나에게 최고의 치유공간이 돼있었다. 바쁜 일상을 쪼개어 산을 오르다보니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같은 산을 오르게 된다. 산을 오르면서 변화무쌍한 날씨 속에서도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를 바라보며 베토벤이 생전에 했던 말이 떠오른다. “사람은 속일 때가 있지만 자연은 그렇지 않다”고.

필자에게 등산이 일상이 된 것처럼 베토벤에게 ‘산책’은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였다. 점심 식사를 마치면 날씨와 관계없이 매일 산책을 했다고 한다. 음악가로서 치명적인 청력 문제로 탄식하며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생을 마감하려 했던 순간에도 그는 걷고 또 걸었다. 산책을 하다 이따금씩 떠오르는 악상이나 생각들이 있으면 가던 길을 멈춰 메모로 남겨두었다. 그렇게 산책하며 담아온 신선한 아이디어들을 돌아와서 음악으로 풀어내기도 했다. 산책은 베토벤에게 창작을 위해 꼭 필요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자연과 함께한 산책이 그의 음악적 영감에 어떻게 녹아들었는지 그의 대표적인 창작물인 9개의 교향곡 중 6번 ‘전원’을 통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같은 해에 태어난 교향곡 5번(운명), 6번(전원)
평화롭기 그지없는 ‘전원 교향곡’은, 1808년 교향곡 5번(운명)과 같은 해에 작곡된 곡이다. 그리고 같은 날, 같은 자리에서 나란히 베토벤의 지휘로 초연된 곡이기도하다. 같은 시기에 태어난 곡임에도 불구하고 두 교향곡의 분위기는 선명하게 대조적이다. ‘운명 교향곡’이라 불리는 5번은 역동적이고 전투적이라면, ‘전원 교향곡’ 6번은 평화롭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리고 ‘운명’이라는 별칭은 베토벤 사후에 붙여진 것이지만 ‘전원’은 베토벤 자신이 직접 붙인 이름이라는 점에서도 구분된다. 베토벤이 두 곡을 함께 무대에 올리며 ‘운명과의 투쟁에서 자연이 주는 안식으로 결국 승리했음’을 공식적으로 선포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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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학대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베토벤이 어머니마저 일찍 잃게 되자 무능한 아버지를 대신해 가장으로서 집안을 지켜내야만 했다.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 발트슈타인 백작의 후원으로 22세에 고향 ‘본’(Bonn)을 떠나 ‘빈’(Wien)이라는 도시에 입성하게 된다. 베토벤은 빈(Wien)으로 이주한지 1년 만에 피아니스트로 크게 성공하자 모차르트 사후에 후원할 음악가를 기다리고 있었던 귀족들의 관심이 베토벤에게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성공도 잠시, 20세 중반부터 찾아온 청력의 문제로 큰 절망에 빠지며 실의에 빠졌고, 끝내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고 마음먹기에 이른다. 자신의 가혹한 운명과 싸우는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그의 발걸음은 언제나처럼 습관적으로 자연과 함께할 수 있는 숲을 향했다. 베토벤은 자연 속에서의 산책으로 생기와 활력을 얻었고, 무한한 에너지를 작품활동을 통해 발산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베토벤은 교향곡 6번을 통해 자신을 절망의 늪에서 구해준 자연에게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다.

낭만의 길을 열어준 ‘교향곡 6번’(전원)
교향곡 6번은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먼저 전통적인 4악장에서 벗어난 5악장으로 이루어져있다. 그뿐만 아니라 각 악장에 표제를 달아 음악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1악장은 ‘전원에 도착했을 때의 유쾌한 기분’을, 2악장은 ‘시냇가의 정경’, 3악장에서는 ‘농부들의 즐거운 춤’을, 4악장은 ‘폭풍’, 5악장은 ‘양치기의 노래’, 폭풍이 지나간 후 감사의 노래’라는 표제를 붙여 각 악장마다의 분위기를 표현했다.

‘전원 교향곡’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하일리겐슈타트 산책로를 베토벤과 나란히 걷는 기분이다. 1악장에서는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그리고 2악장에 현악기들이 ‘졸졸 흐르는 시냇물’을 표현하며 여러 새소리들이 들린다. 플루트는 ‘꾀꼬리’, 클라리넷은 ‘뻐꾸기 소리’ 등을 묘사했다. 4악장에서 펼쳐진 ‘천둥, 폭풍우’는 그야말로 장관이다. 멀리서부터 현악기가 폭풍우를 몰고 와 관악기에게 건네주고 그다음에 타악기로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풍우를 무자비하게 쏟아 붓는다. 5악장에서는 지나간 폭풍우에 감사의 기도를 드리듯 호른과 클라리넷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목가적인 선율을 연주한다.

듣지 못한 귀로 그는 세밀하게 음 하나하나에 자연을 담아냈다. 회화적인 묘사에 그치지 않고 전원을 통해 느낀 감정을 표현하려 했다. 베토벤이 하일리겐슈타트 숲속에서 느꼈을 마음의 안식과 위로, 그리고 자연에게 전하는 고마움이 고스란히 곡을 통해 전해져 온다.

필자는 언젠가 농사일을 지으시는 분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선한 눈매에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흙을 밟고 살아서’라고 하셨다. 너무 공감된 대답이었다. 발끝에서부터 전해진 자연과 흙의 선한 영향력이 우리의 세포를 타고 외모와 생각까지도 변화시킨다. 지금 우리에게 그 흙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베토벤처럼 전원 속을 거닐며 자연이 거룩하게 걸어오는 말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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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송하

더솔아르떼(클래식 인문학, 성악아카데미)대표

독일 드레스덴 국립음대 디플롬, 최고연주자 과정, 마이스터 졸업

남부대, 전남대, 명지대 외래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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