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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칼럼> 죽어야 풀리는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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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평택신문 │ 기사작성 2020-9-14 │ 조회14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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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야 풀리는 비밀

“환생과 영생을 믿습니까?” 라는 질문에 완벽한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필자는 불교를 모태신앙으로 삼고 자라면서 이 질문에 대한 나름의 확고한 답을 가지고 있었다. 생명이란 숨이 다하여도 환생을 한다는 믿음 말이다. 그 믿음을 가지고 또 다른 무언가로 다시 태어나기를 꿈꾸기도 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현재의 필자는 하나님을 믿는 크리스천이 됐다. 지금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려 노력하고 있고, 과거의 나의 믿음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어느 날 친정어머니께 조심스레 운을 떼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신의 영역은 하나님과는 비교할 수 없음을. 그리고 우리 같이 하나님 믿고 천국에 가자고. 별 뜻 없이 건넨 말에 어머니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은 불교에도 있어. 그러니 걱정마”라고 짧게 답했다. 그들이 말하는 극락세계는 내가 믿고 있는 천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죽어보지도 않은 내가 나의 말이 맞다는 증거를 내세울 수 없었기에 나는 나대로 보이지 않는 믿음을 실제라 믿고 살아가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필자뿐일까.    


미술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미술’이 무엇인가.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어렵지 않게 미술을 접할 수 있지만, 그것의 정체에 대해서는 무지했던 것은 아닌지 자문해본다. 우리가 현재 주변에서 접하는 미술이라는건 학원, 학교를 다니면서 배우는 그것이면서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익히 봐왔던 것들이다. 사실 미술이라는 것은 배워서 익히는 기술이 아니며 공부해야 알 수 있는 분야도 아닌 원초적인 것에서부터 늘 함께 해왔던 것이라 할 수 있다. 단지 우리가 잊고 지냈을 뿐이다.

무용은 몸으로 음악은 소리로 문학은 글로 전달되는 예술이라면 미술은 조형예술 즉, 형태의 아름다움에서 전달되는 감성 예술이라 할 수 있다. 조각가들은 입체물로 화가들은 평면 그림으로 아름다움을 표현해냈다. 텔레비전과 같은 영상매체가 없던 시절 우리 인간들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며 살았을까? 이런 원초적인 질문으로 작업을 했던 백남준 작가의 ‘달은 가장 오래된 TV’라는 미디어 작품이 있다. 인류에게 가장 오래된 빛의 원천은 ‘달’이며 12개 각각의 텔레비전 화면 속에 초승달부터 보름달까지의 달의 주기를 보여주는데 내용의 깊이를 알지 않더라도 그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텔레비전이 없던 시절의 인간들의 예술작품이 되었던 ‘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다.

우리가 현재는 텔레비전이라는 매체로 다양한 정보를 얻지만 그것이 없던 시절 우리 선조들은 달을 보며 예술적 감수성에 자극을 받지 않았을까. 이렇게 미술은 시작되었을지 모른다. 우리가 달을 보며 방아를 찧고 있는 두 마리 토끼를 형상화했듯이 돌멩이나 벽의 깎이거나 모난 부분을 통해 새로운 것들을 형상화해 시각적인 예술로 승화했던 원시시대의 벽화들을 보면 미술은 누군가의 가르침이 아니라 우리 주변 환경에 의해 자생적으로 발생해 발전된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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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지 않는다
‘영생’과 ‘환생’이라는 용어를 접하면 이집트가 가장먼저 떠오른다. 영원한 생명을 믿었던 그들의 삶은 어땠을까. “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큰 사막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초대형 오아시스인 나일강과 그에 대조되는 녹색의 풍요로운 땅은 그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다. 나일강의 주기적인 범람은 토질을 비옥하게 만들어 이집트 사람들에게 지상낙원과도 같은 풍요로운 삶을 제공했으리라. 범람의 수위가 지나칠 경우엔 홍수라는 대재앙을 낳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론 나일강의 덕을 본 이집트였다.
 
그들이 얼마나 풍요로웠는지는 왕과 여왕의 무덤들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사실 그만한 데에는 많은 백성들의 노동이 필요했으리라 짐작된다. 이러한 풍요의 땅 그리고 불모의 땅 위에 살면서 이집트인들이 느꼈던 정신세계는 남달랐을 것이다. 삶과 죽음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는 이집트의 땅. 범람했다가도 잔잔한 모습으로 되돌아오기를 반복하는 나일강처럼 우리의 생명도 영생과 환생을 통해 꺼지지 않고 영원하리라는 믿음이 생길만하다. 낮과 밤이 공존하듯, 우리의 인생도 삶과 죽음이 함께한다. 즉 육신은 죽었어도 내 영혼은 살아있으며 그것이 머무를 수 있는 곳이 필요했는데 그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바로 미이라 그리고 조각상이다. 살아서 집이 있듯 죽어서도 집이 있어야 한다는 이유인 것이다. 이집트 조각상들에는 특별함이 있는데 실제 살아있는듯한 생동감을 주기 위해 눈을 그림으로 그리지 않고 유리알로 진짜 눈처럼 만들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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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인들의 꿈과 열정
이집트의 미술이 원시적인 미술에 가깝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꽤나 아름답고 정교하며 남다른 스케일과 완성도를 보여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피라미드 같은 경우 외계인이 만들었다는 설이 설득력을 얻으리만치 그들의 미술은 불가사의하고 대단한 것이었다. 그들만큼이나 죽어서도 지상에 돌아오길 간절히 꿈꾸며 죽기 전 그렇게 열심히 준비한민족이 또 있었을까. 나일강과 사막이 삶과 죽음의 상징이었던 그곳에 살던 그들은 그것이 당연했을 것이다.

미이라에 대한 우리의 호기심은 죽은 이의 몸을 구경거리 삼는데서 끝나지 않아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믿는 다는 것은 무모한 짓 혹은 미신이라 단정 짓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누구나가 꿈을 꾸며 살아간다. 그들이 그토록 염원했던 꿈은 어찌 보면 지금의 우리의 꿈과 연결되어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들이 무엇을 위해 영생을 꿈꿨는지는 모르지만 필자의 경우는 사랑하는 가족과 영원한 삶을 누리고 싶은 마음에 이승에서의 생명 꼭 죽어야 하는가? 라는 의문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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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나이기에 그것은 이승에서 이루어 질 수 없는 소망이라는 것을 알지만 내가 원하는 그림을 그리듯 소망을 마음으로 그려내는 것은 나쁜 게 아니니 말이다. 그래서 필자는 각자 나름대로 믿고 섬기는 신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싶다. 친정엄마의 말씀처럼 그들의 믿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 삶의 원동력이 된다면 말이다. 그리고 죽어야만 알 수 있는 모든 비밀을 우리는 애써 미리 걱정하며 살 필요는 없다.

다만 영생과는 별개로 우리는 그들의 삶의 방식을 통해 깨달아야 할 것은 분명하다. 이집트 민족들은 자신들의 터전에서 받은 영감으로 생긴 꿈을 이뤄내기 위해 열정적인 삶을 살았고 수천 년이나 지난 지금 이 시대에도 그들이 남겨놓은 뛰어난 예술품 때문에 그들의 정신적 세계관은 우리들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단순하지만은 않은 것이 우리들의 삶 아니던가. 그 점을 철학적으로 진지하게 다루면서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켰던 그들의 삶을 우리는 흥미롭게 보고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꿈꾸며 살아가는가? 그 꿈을 위해 얼마만큼 열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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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미 원장

덕원예술고등학교 미술과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무대미술과 졸업

무대의상디자이너 겸

입시미술 지도경력 다수

달리미술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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