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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기부자로부터 온 편지] 어머니, 그리고 ‘나’와 ‘남’과 ‘우리’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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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평택신문 │ 기사작성 2021-1-13 │ 조회204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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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기부자로부터 온 편지

-어머니, 그리고 ‘나’와 ‘남’과 ‘우리’를 생각하며 

 

 

 

저는 4남 3녀중 막내딸입니다. 10년전 아버지가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나신 후 혼자 남으신 어머니를 ‘내가 책임진다’고 호기롭게 선언하고 함께 산 지 7년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으나, 올해 87세가 되신 어머니의 치매 증상이 망상과 의심, 불결함과 고집으로 나타나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어머니는 약도, 요양보호사의 도움도 거부하셨습니다. 미처 예상치 못한 상황에 저와 남편은 처음 모실 때의 마음가짐은 오간 데 없이 당황스러움이 컸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힘들어하던 중 설상가상으로 코로나까지 왔습니다. 온 가족이 함께 집안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져 힘들게 더 이상 갈등을 피할 수 없게 됐고, 누구할 것 없이 자제력을 상실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급기야 어머니는 사위집에서 눈치보며 사는 게 싫다고 독립을 선언하셨습니다. 말려봤지만 보통 고집이 아닌 어머니를 이길 수 없었습니다. 요양원도 끝내 거부하시는 어머니를 가족회의 끝에 얼마 전 보내드렸습니다. 

 

집을 못 찾아 경찰이 출동한 적도 다반사고, 카드키만 대면 열리는 현관문을 못 열어 혼자 집 밖으로 못 나가신 데다 즐겨마시는 소주 때문에 점점 더 안 좋아지시는 어머니입니다. 굽은 허리와 무릎 관절염 때문에 걸음이 힘들어 대소변 실수까지 잦으신 분이 이 엄동설한에 혼자 사신다니요.

 

그런데 안 된다, 안 된다 말하면서도 한편으론 너무 큰 짐을 내려놓고 싶었나 봅니다. 지금 제 마음 한 켠에 홀가분함이 어색한 방문객처럼 자리하고 있습니다. 

 

홀가분함.

 

저에게 너무 큰 상념을 불러일으키는 말입니다. 죄책감도 내 처지엔 사치라며 남편과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집중하려 해도 죄책감과 홀가분함이 번갈아가며 저를 괴롭힙니다. 자식, 엄마, 아내, 그리고 나 자신.... 나라는 사람을 어디에 얼만큼씩 나눠 주며 살아야 좋은 것일까요….

 

먼 훗날 후회하지 않기 위해 ‘나’와 ‘남’을 ‘우리’ 속에 넣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삶의 자세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위해 ‘나’를 희생한다고 세상이 나에게 늘 ‘행복’이라는 보답을 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애로운 사람 앞에선 초라했고, 냉철한 사람들에게는 의심받았고, 어머니를 모시지 않은 형제들에게 ‘네 덕분’이라는 말 대신 ‘너 때문’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제 머리칼도 한겨울 눈 내리는 강원도 정선의 을씨년스러운 들녘 마냥 새하얗게 변했습니다. 아스라이 추억을 떠올리는 나이가 된 지금, 내 안에 있는 것이 행복인지, 풍요로움인지, 안식인지 어느 것 하나 확인되지 않습니다.  

 

요즘 저는 내가 나의 만족을 위해, 내 존재감을 확인 받기 위해 그 동안 남도 나와 함께 우리여야만 한다고 고집하며 살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방관자로 사는 것은 마음이 불편했기에, 차라리 몸이 불편하더라도 힘든 일을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내 마음 편하자고 남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 것이 아닌가, 후회하게 됩니다.

 

진심은 늘 진실일까?   

진심이 변하면 그것 또한 진심이라 할 수 있을까?  

진심이 또 다른 진심과 상충하면 도대체 무엇이 진짜 진심일까? 

 

비단 어머니의 일 때문만은 아닙니다. 

제 나이 50을 넘기는 시기, 삶의 방식에 대해 사색하는 시간입니다. 이 사색은 해를 넘겨 계속되고 있습니다. 미숙한 삶을 사는 모습을 부끄럽지만 고해하듯 풀어놓으며 현명하신 독자들의 조언도 바라봅니다.

 

연말연시를 맞아 평택의 요양원에 소정의 물품을 기부하기로 하고, 고심 끝에 콩나물 시루를 선택했습니다. 콩나물 시루는 무료한 노인들이 소소한 취미생활로 성취감을 느끼기에 더 없이 좋습니다. 저희 어머니도 콩나물 시루를 키우고 계시죠. 제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외롭고 무료한 분들의 시간을 채워주는 작은 도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저의 정성을 기꺼이 이해해 주신 평택신문 강주형 국장님, 기부를 풍성하게 해주신 박종근 대표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2021년 1월 어느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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