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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풀이’ ‘승무(僧舞)’의 명인 고희자-경기도 무형문화재 제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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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평택신문 │ 기사작성 2016-10-24 │ 조회319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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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져가는 지역 전통문화 보존·계승에 앞장
문화예술, 일상에 지친 여행자들의 안식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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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해의 나쁜 운을 풀기 위해 굿판을 벌였는데 그곳에서 무당이 신 내리기 위한 수단으로 추던 춤을 살풀이춤이라 불렀다.
승무는 승려무용, 살풀이춤 또는 궁중무와 탈춤의 영향을 받아 교방예술로 발전된 것이다.  
 
고희자 명인은 정조대왕(正祖大王)의 행궁(行宮)이었던 화녕전(華寧殿) 풍화당(風化堂) 내 재인청에서 계승된 수원에서의 승무·살풀이춤의 맥을 이어오고 있는 이수자로 1991년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됐다. 고희자 명인은 종전 전승자인 옥당(玉堂)정경파(鄭慶波) 선생으로부터 춤을 사사 받았다. 

고희자 명인은 어려서부터 춤을 좋아했다고 한다. 자신이 춤을 좋아하게 된 것은 어릴 적 고모님과 아버지의 영향 때문이란다. “지금도 고모님과 아버지가 함께 어울려 장구장단에 맞춰 춤을 추고 소리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라요”라며 과거를 회상했다. “당시에는 예술 하는 사람들이 대우를 받지 못할 때라 제가 전통예술을 배운다고 했을 때 아버지의 반대가 엄청 났죠” 아버지는 명인이 4남매 중 맏이인데다가 당시 전통예술가들이 궁핍한 생활을 면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극구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명인의 재능을 일찍부터 알아본 어머니는 아버지 몰래 물심양면으로 많은 지원을 해줬고, 그 덕에 예고에 무사히 진학할 수 있었다고 한다. 예고진학 후에도 꾸준히 활동을 이어오다 정경파 선생과 인연을 맺게 됐고 전통춤의 계승자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타지에서 입지를 다져 인정받는 전통예술인 되었지만, 어느날 문득 고향이 그리웠다고 한다. “그냥 마음한구석이 허전한기분도 들고, 마음을 나눌 선·후배와 친구들이 그립기도 했죠” “하지만 무엇보다 문화예술의 불모지인 평택에 기반이라도 닦아둬야지 않겠나하는 생각이 들었던 게 환향(還鄕)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죠”라고 평택에 터를 잡게 된 사연을 설명했다.

1978년경 명인이 평택에 돌아왔을 때는 모든 것이 도전이고 시련이었다고 한다. 누구하나 알아주지도 않는데 시민들을 위한 예술 공연을 쉼 없이 기획하고 무대에 올렸다. 학원을 설립해 후학을 양성하고 예술의 저변을 확대하는 노력도 지속했으며, 더 많은 사람들이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국악협회 지부를 설립, 지역 내 문화예술인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데도 열심이었다. 명인은 문화예술을 알리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그곳이 어디든 찾아갔다. 강단에서는 지도자로, 문화공연 총연출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명인이 고향평택에 돌아오자마자 제일먼저 시작한 일은 미군들을 대상으로 우리 문화예술을 알리는 것이었다. 문화예술 전도사로서의 역할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 조금 변화가 생겼다고 말한다. “이전에는 미군들과 가족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프로그램을 운영했었지만, 최근에는 다문화가정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 변화라면 변화죠” 명인은 우리의 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가감 없이 보여주는 노력을 통해 다양한 문화권과의 소통도 활발해 질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 명인의 가장 큰 관심사는 평택을 문화예술 거점역할을 하는 문화도시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평택농악은 그 가치에 비해 명성이 높지 않은 것이 사실인데, 문화예술인으로서 노력이 부족했던 것 같아 반성하게 된다”며 “민관이 합심해서 전통문화를 발굴·육성하기 위한 노력을 함께한다면 가치에 걸맞는 명성을 얻게 될 날도 멀지 않았다”고 말하는 그였다.

 

명인은 사라져가는 우리 전통문화예술의 명맥이 끊기지 않고 계승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자신의 숙명이라고 말한다. “문화예술 저변확대도 중요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가는 전통문화예술을 온전히 지켜내 후손들에게 계승해주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해요”라며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풍토가 무조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문화예술 전반에 걸쳐 전통문화예술과 현대문화예술에 고른 지원과 관심이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것이 작은 바람이죠”라는 명인의 얼굴에서 서운함과 회한이 묻어나는 것 같아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명인은 “문화재단도 좋고 민·관이 함께하는 협의체를 구성하는 등 노력을 통해 일관되고 지속성 있는 지역문화육성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고희자 명인은 조화롭게 공존하는 세상 이치가 담긴 문화예술의 계승발전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우리 것, 오래된 것을 찾기보다 남의 것, 새로운 것만을 쫓는 세태는 곧 한계점에 도달하고 말 것이다. 뿌리를 잊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으니 말이다.

 

 

구원서 기자 guwonse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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