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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년 역사, ‘최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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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평택신문 │ 기사작성 2019-5-3 │ 조회338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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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년 역사, ‘최네집’

부대찌개 하나로 반백년을 이어온 파란만장(波瀾萬丈)한 역사(歷史)를 말한다


평택(송탄) 부대찌개의 원조(元祖) ‘삼보집’ 그리고 ‘최네집’
1969년 11월 신장동 322-4번지 삼보극장 건물에 ‘삼보집’이 오픈했다. 삼보집은 연탄목로 테이블 5~6개가 간신히 들어가는 10여 평 남짓한 작은 가게로 주 메뉴는 부대찌개(당시 존슨탕) 였다. 미리 말 한다면 훗날 송탄 ‘최네집’의 기원이 된 가게다.

사실 K-55 정문앞에 ‘삼보집’보다 먼저 부대찌개를 팔던 가게가 두 곳 정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명맥이 끊겨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그러니 반백년 넘는 세월동안 부대찌개만 고집하고 지켜온 ‘삼보집’ 즉 지금의 ‘최네집’이 평택(송탄) 부대찌개의 원조(元祖)라 표현해도 정도에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명실상부(名實相符)한 ‘맛 집’으로의 성장과 위기
당시 삼보집의 주된 고객은 공군 조종사들 이었다.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조종사들은 계급장을 떼고 식당을 찾았었다”고 최 여사는 말한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주목할 것은 지금처럼 정해진 가격표 없이 최정자 여사가 ‘부르는게 값’인 일명 ‘주인 맘’대로인 가게였다. 메뉴는 당연히 부대찌개(존슨탕)가 전부였다.

그렇게 평택(송탄)의 맛 집으로 승승장구하며 성장하던 삼보집이 개업 7년만인 1976년 11월, 창업 이래 최대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업주 최정자 여사가 심각한 사기에 휘말리며 더 이상 영업을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평택 부대찌개의 계보가 끊길 위기에 봉착했던 시기다. 사기(詐欺) 때문에 전 재산을 날려버린 최 여사는 무기력증에 시달리며 삶의 의욕조차 바닥으로 내 던지고 모든 것을 포기하기 직전에 이르렀다.

우정(友情)으로 일궈낸 재기(再起) -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그렇게 힘겹게 몇 달을 버티던 1977년 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최 여사를 믿고 재기의 기회를 준 친구 덕분에 신장동 골목에 ‘최네집’이라는 상호로 부대찌개 가게(현재 신장동 ‘김네집’ 자리)를 새롭게 단장한다.

당시 신장동 최네집 자리는 허름한 술집이었다. 최 여사는 친구(이 모씨)가 지원해준 오백만 원을 종자돈삼아 ‘최정자네집’ 부대찌개 가게를 새롭게 열수 있었다. 하지만 좁은 골목에 ‘최정자네집’이란 큰 간판을 걸 수 없어 ‘최네집’으로 이름 빼고 성만 사용한 조촐한 간판을 사용했다. 사글세를 내는 초라한 가게였지만 간판만큼은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내 걸만큼 자긍심과 자부심을 드러내 보이고 싶었다고 한다.

죽음을 생각할 만큼 어려운 시기에 선뜻 손을 내밀어준 친구 덕분에 지금의 최 여사가 있고, ‘최네집’이 존재할 수 있었다. 여기서 꼭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최네집’의 존재 가치는 대한민국 요식업계에 한 획을 그을 만큼 중요한 포인트로 남았다는 것이다.

2호점을 '본점'으로 변경
그렇게 다시 성공가도를 걷게 되며 서정동 송현성당 인근 주택가에 ‘최네집 2호점’을 열고 사세(社勢)를 확장했다. 하지만 주차공간부족 등으로 인해 현재 ‘최네집 본점’ 자리(서정동 779-3번지)로 2호점을 옮기게 된다.

‘최네집 1, 2호점’은 연일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뤘다. 그러던 중 최 여사는 중차대한 결심을 하게 된다. 두 마리의 토끼를 쫒기보다 한 곳에 집중하기로…
결국 ‘신장동 최네집’을 함께 일하던 동생에게 매각하고, ‘최네집 2호점’을 ‘본점’으로 변경했다. 이때가 1992년이다.

이후 ‘신장동 최네집’은 ‘김네집’으로 상호를 변경하게 된다.

최정자 여사는 11남매 중 장녀로 1940년 경주에서 태어나 부산 서면의 거저리초등학교를 중퇴했다. 최 여사는 “동생들 뒷바라지를 위해 가사노동은 물론 이곳저곳에서 이일 저일 하다 보니 송탄이란 낫선 곳까지 오게 됐다”며 “어린나이에 ‘삼보집’을 차리고 장사가 잘 되다 보니 돈 버는 맛에 연탄가스에 중독되는 것도 모르고 일했던 시절도 떠오른다. 또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와주던 조종사 분들은 건강하게 잘 살고 계시는지 궁금하다”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부대찌개의 시작
부대찌개 장사 50년, 그 긴 세월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느냐’라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있다”며 최 여사는 주저 없이 ‘최 사장님’이라고 말했다.
“수많은 유명인들이 다녀갔지만 기억에 선한 손님은 당연 최 사장님이죠”라며 “최 사장님은 용인시 남사면 어딘가에 사신다는 것 정도만 알 뿐, 물론 성함 조차도 모른다”고 빙그레 웃음을 보였다.

말 수가 유난히 적었고, 가게를 찾을 때마다 앞 이가 살짝 보일 듯 미소 지으며 점잖게 건네는 몇 마디가 전부였던 최 사장님. 유독 그 분이 최 여사의 기억에 남아있는 이유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미군부대에서 음성적으로 흘러나온 식재료로 만든 부대찌개의 원형은 평택(송탄)식과 의정부식으로 크게 나뉠 수 있다. 두 지역 다 거의 동시에 생겨난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재료로 부대찌개를 만들었다는 핵심이 같아서 어느 쪽이 먼저냐에 관한 견해는 나뉘고 있다. 하지만 부대찌개라는 이름을 대중적으로 퍼트린 것은 의정부, 흔히 부대찌개로 아는 형태로 활성화 시킨 곳은 평택(송탄)이라는 의견이 모아진다.

마지막으로 결론지으면 평택(송탄)에서 더 나아가 대한민국 전체를 총 망라해 부대찌개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원조를 꼽는다면 단연코 ‘최네집’이라고 단언(斷言)할 수 있을 것이다.

강주형 기자iou868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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