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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배령…천상의 향기 품은 ‘위로의 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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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평택신문 │ 기사작성 2017-10-16 │ 조회177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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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여 가구, 200여명 주민만이 전부
단풍취·노랑제비·참개벌꽃 등 야생화 천국
살둔·연가리 등 옛 지명 남아 ‘삼둔오갈’로 불려
가슴과 온 몸으로 간직되는 ‘천상의 향기’ 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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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 화원 곰배령, 그 곳에 꽃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온 산을 화려하게 장식했을 꽃들의 흔적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단풍취와 노랑제비, 참개벌꽃, 현호색 등 계절에 맞춰 수없이 많은 들꽃들이 피고 진다는 곰배령의 모습을 상상했지만 우리의 방문을 반기지 않는 듯 그날따라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바람에 몸을 가눌 수 없었다. 그렇잖아도 전 날 마신 술 탓에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터라 날씨를 핑계 삼아 산행을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동행한 친구 몇몇의 성화에 못 이겨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한 달만 더 일찍 왔더라도 ‘천상의 화원’이라는 곰배령의 화려함을 만끽할 수 있었을 텐데, 꽃들도 지고 날씨까지 좋지 않아 산행이 어려울 것이라는 우리의 투덜거림에 펜션 주인장이 한마디 거든다.


“꽃구경이 목적이라면 굳이 곰배령까지 오지 않아도 도시의 꽃 축제를 가는 게 낫지 않나요?”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했다. 필자가 처음 곰배령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2012년 3월에 종영한 ‘천상의 화원 곰배령’이라는 드라마를 보고부터다. 지금은 고인이 된 탤런트 김영애씨와 최불암, 유호정, 전원주씨 등이 나와 강원도의 아름다운 외딴 산골 곰배령을 배경으로 할아버지와 딸, 손녀가 펼치는 사랑과 화해의 가족 드라마였다. 평소에도 산골 생활을 동경하던 내게 드라마 속 곰배령은 말 그대로 지상의 낙원이었다. 지금은 곰배령의 볼거리를 야생화로 알고 있지만 나를 사로잡았던 건 흰 눈이 가득 쌓인 겨울풍경이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꽃구경을 할 수 없다고 아쉬워했던 마음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리곤 비 오는 날의 곰배령은 어떤 자태를 뽐내고 있을지 궁금했다. 왕복 4시간 거리를 의식한 우리는 간단한 주먹밥을 준비하고 일회용 우비를 구입해 둘러 입고 산행 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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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이 하늘로 배를 드러내고 누운 형상 닮아

곰배령이 위치한 강원 인제군 기린면 진동2리는 서울 강남구보다 넓지만 120여 가구에 주민은 200여명이 전부다. 면소재지 현리에서 30km나 떨어져 있고 방태천을 따라 양양군 서림마을까지 연결된 418번 지방도(조침령로)를 1시간 가까이 거슬러 올라야 하는 곳이다. 계곡 양편으로 산은 점점 높아지고 계곡은 더욱 깊어지는데, 정상 부근은 오히려 경사가 완만하고 부드럽다. 곰배령(1164m)이라는 지명도 산세가 ‘곰이 하늘로 배를 드러내고 누운 형상’이라는 의미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곰배령은 행정구역상 진동2리로 묶었지만, 일대에는 살둔, 올둔, 달둔, 연가리, 적가리, 아침가리, 명지가리 등의 지명이 남아 있어 ‘삼둔오갈’이라고도 부른다. 지역 방언으로 ‘둔’은 고원지대의 평평한 땅을 가리키고, ‘가리’는 계곡 속 제법 넓은 터를 뜻한다. 그래서 정감록에 난을 피할 수 있는 살기 좋은 곳이라고 썼다지만, 그럴듯하게 꾸며낸 말일 뿐이다. 실상은 오히려 정반대였다. 곰배령은 백두대간 줄기로 중요한 군사 통로였기 때문에 한국전쟁의 전란을 피해가지 못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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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간마을 잇는 ‘고갯길’이자 상인들의 ‘교역로’

이곳은 해방 전까지만 해도 400여 가구의 화전민들이 골짜기마다 밭을 일구고 살았지만 전쟁 이후에는 대부분 월북하고 빈 마을이 되었다. 마을 바로 아래는 38선이다. 이후 1950년대 후반 농사를 짓고 살면 땅을 주겠다는 정부의 유인책으로 다시 사람이 거주하게 됐지만, 그 수는 많지 않다. 현재 120여 가구 중 당시부터 살아온 ‘원주민’은 5가구에 불과하다고 하니 산골 중에 산골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2009년에 전파를 탄 MBC스페셜 ‘곰배령 사람들’을 시작으로 필자가 애청한 드라마 ‘천상의 화원 곰배령(2011)’ 등이 방송되면서 이주민들의 발걸음이 분주해 지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곰배령의 이국적 풍광까지 주목 받으며 관광객들의 발길 또한 늘어나고 있다.
지금은 등산로로 이용하고 있지만 본디, 곰배령은 인근 단목령과 함께 산간마을을 연결하는 주요 고갯길이었다. 기린면 진동리에서 인제읍 귀둔리를 오가며 동해의 어물과 산골의 곡식을 교환하던 상인들에게도 중요한 교역로였다. 그 길을 따라 지게꾼과 말몰이 상인들을 위한 주막이 2곳이나 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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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수한 ‘막걸리’와 ‘산나물 전’이 주는 휴식

점봉산 생태관리센터가 위치한 설피밭 마을에서 곰배령 정상까지는 약5km로 만만찮은 거리지만, 그리 험한 길은 아니다. 관리센터에서 강선마을까지 약2km 구간은 오르막이 거의 없는 비포장 흙 길이다. 시작부터 잎 넓은 나무들이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왼편으로는 열목어가 거슬러 오르는 계곡이 이어져 청량함을 더한다.
오랜만의 산행에다 거세게 몰아치는 비바람 탓에 지칠 대로 치쳐 있던 우리는 강선마을 입구에 다다라서야 생기를 회복했다. 반갑게 맞이하는 주막집 주인의 안내를 받아 옥수수 막걸리와 산나물 부침개를 주문했다. 무릉도원이 실감났다. 구수한 옥수수 막걸리에 특유의 산나물 향이 물씬 풍기는 부침개 한 조각, 좋은 사람들과의 시시콜콜한 수다 한 자락이 안개 자욱한 풍광을 더욱 오묘하게 만들었다. 찰나의 여유와 알딸딸함을 친구 삼아 다시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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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많아 한겨울 ‘설피’없이 다닐 수 없어

강선마을을 지나면 그제야 본격적인 등산로다. 그다지 가파르지 않고 완만한 산길이다. 설악산 바로 옆이지만, 산세는 지리산 둘레길처럼 푸근하다. 커다란 광주리 모양의 양치식물인 관중이 넉넉한 그늘 아래 퍼져있어 원시림의 기운을 느끼게 하지만, 화전민들이 땔나무를 하던 곳이었음을 감안하면 그리 오래된 숲은 아닌 듯하다. 곰배령 입구 설피마을은 눈이 많아 한겨울에는 설피가 없으면 다닐 수 없다는 데에서 유래됐다고 하는데 조사한 자료와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원래는 땔나무를 통틀어 일컫는 섶나무에서 유래했고, 옛 지명도 ‘섶나무밭’을 뜻하는 신전(薪田) 이었단다.
고개 정상을 코앞에 둔 마지막 10여분이 그나마 힘든 구간이다. 게다가 정상으로 갈수록 거세게 몰아치는 비바람을 피하며 힘없이 펄럭이는 1회용 우비를 여미느라 손이 바빴다. 그러나 언뜻 언뜻 보이는 나뭇잎의 색은 분명 달랐다. 산 아래는 가을을 알리는 붉은빛이 드문드문 드리워져 있을 테지만 안개와 비바람으로 인해 앞을 가늠할 수 없었다. 드디어 곰배령 정상에 발을 디뎠다. 기다렸다는 듯이 퍼부어 대는 세찬 빗줄기와 자욱한 안개로 인해 두려움마저 느껴졌다. 산 정상에 펼쳐진 넓디넓은 꽃밭에는 힘없이 스러진 꽃대들과 아직은 화려했을 그 때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지다만 꽃잎들이 남아 있었다. 아름다움만을 좇는 사람들을 나무라기라도 한 듯 바람은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가까스로 사진 몇 장을 찍은 후 돌아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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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고 고된 삶에도 나만의 향기 잃지 말아야

그때였다. 코끝을 자극하는 은은한 향기가 느껴진 것이…. 꽃도, 잎도 모두 시들어진 그 곳에서 그토록 아름다운 향기가 풍겨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꽃이 한창인 그때 왔더라면 아마도 향기에 취해 어지럼증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꽃은 떨어지고 비쩍 마른 가지만이 지천이었다. 게다가 비바람마저 몰아치는 악천후가 아니던가. 그러나 향기는 주변 상황을 게의 치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런 환경이었기에 향기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더욱 실감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곳은 내게 말을 걸었다. ‘힘들고 고된 삶이라도, 언제나 자신만의 향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고…. 그랬다. 곰배령은 ‘천상의 화원’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꽃밭의 형상이 아닌, 가슴과 온 몸으로 간직되는 천상의 향기를 품은 ‘위로의 낙원’임에 틀림없었다. 

<곰배령 가는 길>

△점봉산 곰배령은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인터넷 예약과 진동리 펜션 이용객 각 300명으로 입산 인원을 제한하고 있다. 인터넷 예약은 산림청 홈페이지(www.forest.go.kr)에서 할 수 있다. 진동리의 펜션을 이용할 경우 미리 등산 계획을 말하면 예약을 대신해 준다. △길이 가파르지 않지만 왕복 10km가 넘는 거리여서 4시간은 잡아야 한다. 제한 시간인 오후 4시 이전에 하산하려면 오전 11시 이전에 생태관리센터를 통과해야 한다. 신분증 지참 필수다.

이보용 기자 bylee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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